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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수가성 여인처럼 나가 전하라 ( 요 4:27~42 )

425호 · 2008-04-17

제가 예수를 믿기 전, 당시 제가 건축한 건물에 두 교회가 세 들어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들은 저를 보면 늘 “이사장님, 예수 믿으셔야죠. 제가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 예. 감사합니다.” 하고 상투적인 답례를 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예수를 전했는데, 어느 날 제 친구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이봐, 너는 세상 것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고 최고가 되려고 하면서, 왜 죽음 다음의 세상에는 무관심한 거야?” 그 말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죽은 다음의 세상이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 저에게 죽은 다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성령을 받아 오늘날 목사라는 귀한 직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저는 전도가 때론 축구경기처럼 느껴집니다. 상대선수에게서 공을 빼앗아 미드필드를 넘었는가 싶더니 다시 태클에 공을 빼앗기고, 다시 공을 빼앗아 차고 들어가 골대를 향해 공을 날렸는데 골키퍼에 의해 막히고, 때론 골대 맞고 튕겨 나오고….

이제 지쳐서 뛸 힘도 없을 즈음에 생각지 않은 어시스트로 골인을 시키는 축구경기 말입니다. 공을 한 영혼이라고 해봅시다. 세상으로부터, 죄악으로부터 한 영혼을 빼내와 주님 품에 골인시키기까지 정말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 모릅니다. 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다음 주에는 꼭 교회에 가겠노라 해서 주일 아침부터 그야말로 모시러 갔더니 “교회 가면 돈 내라고 한다더라.”, “그 교회는 이상하다더라.”, 이러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 정말 맥 빠지지요. 그래서 다시 전하고 달래서 교회에 데려다놓았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목사님께서 때마침 십일조 설교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그 영혼의 반응은 뻔할 뻔자지요. “거봐라, 돈 내라고 하잖아.” 골대 맞고 나온 경우입니다. 그래서 다시 성경을 펴들고 십일조를 왜 내야하는지 설명하고, 다시 교회에 앉혀놓았는데, 성도끼리 싸움하는 걸 보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겪고 나서야 한 영혼이 교회 안에 온전히 정착하게 됩니다. 물론 멀리서 공을 때렸는데 바로 골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번 전도했는데 바로 교회에 나와 은혜 받는 경우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흔치 않지요.

전도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음에도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쉬우면 하고 어려우면 그만 두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이란 단어 안에는 이미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분부한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장 2절의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전도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한다”고. 그러나 전도의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장 2절의 말씀처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오셔서 행한 일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칼빈이나 웨슬러를 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죽으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태만상인데 어떻게 획일화된 전도법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리는 하나이니 그 진리를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벽에 못을 박다보면 못이 튕겨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망치로 내리친 만큼 벽에 못 자국이 깊이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몇 번 치면 언젠가는 못이 박히게 된다는 겁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전하다보면 튕겨 나오기도 하지만 복음이 그만큼 들어간 것이고, 언젠가는 참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가장 금해야할 것은 낙심하는 일입니다. 낙심하지 않으려면 전도자가 품어야할 꿈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전도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람이 점차 성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다면, 더욱이 그가 교회의 직분자로 변모하는 것을 그린다면 절대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서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제 동생 이시대 목사를 전도할 때도 단번에 된 것이 아닙니다. 이시대 목사는 철산리에서부터 마가 다락방 시절을 지나 인천 숭의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섰습니다. 그러나 제가 낙담하지 않은 것은 그가 변화되면 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목을 자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당신이 전도하는 그 사람이 아직 안 잘리는 것은 거목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잘리기만 한다면 그는 주님을 위한 거대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둘째,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한 영혼을 구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드리고 두드려서 그의 마음이 열리고 그래서 전도에 성공하면 교회의 목사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십니다. 성경은 한 영혼을 잃어버린 양으로(눅15:4~7), 잃었던 드라크마로(눅15:8~10), 잃었던 아들로(눅15:11~32)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면 기뻐 잔치를 배설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눅15:7).

셋째, 전도하면 하늘의 상이 있으니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귀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그 종들을 불러 각각 한 므나씩을 주고 돌아와 회계할 때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다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으나 한 종은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놓았다가 내놓자 주인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도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했으나, 남긴 것이 없는 종에게는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 죽이라”(눅19:24~27)고 했습니다.

전도는 취미가 아닙니다. 전도는 구호도 아니고 실전이며, 마땅히 실천해야 할 주님의 지엄하신 명령입니다. 많은 전도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영혼구원을 위하여 뛰었고, 뛰고 있으며, 앞으로도 뛸 것입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구령사업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분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도자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 귀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어려운 것 다 압니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수가성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즉시 나가 자기가 만난 예수를 전했습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4:39). 수가성 여인이 전도의 방법론에 따라 전도를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만난 예수를 전했습니다. 전도는 방법이 아니라 할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주님은 추수의 때가 가까웠는데, 영혼구원을 왜 늦추느냐고 질책하고 계시지 않습니까(요35~38)?

사랑하는 내 가족, 친지, 친구와 이웃이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당신이 방치하고 있다면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들을 건지세요. 그들에게 입을 열어 예수를 전하세요. 한 번으로 안 되면 열 번, 스무 번 전하세요. 당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분명히 확장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할렐루야!

전도는 구호가 아니다

전도는 실천(實踐)이다

관심은 살리는 것이요

무관심은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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