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인가? ( 행 1:1~9 )
저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한 이상을 봤습니다. 홍수가 나서 누런 흙탕물이 내천을 이뤘는데, 그 물살에 많은 양떼들이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어서 가서 저들을 구하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잠시 멈칫하고는 주님께 여쭸습니다. “주님, 저의 양 떼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주님이 “저편을 보아라.” 하시기에 그곳을 보았더니 제 양 떼는 푸른 초장에서 목동들의 보호 아래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 이상은 주님의 관심이 오직 영혼구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비전과 목회방향을 주님의 뜻인 ‘영혼구원’으로 정하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 소의 심정으로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주님은 때를 기다리셨고, 때가 되매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셨으며,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사 열린 심령이 된 자의 영혼을 얻기 위함이었고, 가르치사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영혼을 얻기 위함이었으며, 병든 자를 고치사 이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도록 하여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때가 되자 그 분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유월절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장차 성령이 오실 일에 대해, 성령이 하실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요15). 그리고 그 분은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고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수난과 부활이 전 인류의 구원과 죄 사함에 있다는 것에 대한 증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500문도 앞에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이 계속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을까요? 왜 주님의 증인이 되라 하시고 성령이 임할 때까지 성에 유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답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이것이 답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이 지상에서 하셨던 일, 곧 영혼 구원의 일을 우리가 계속 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너희 힘이나 능력으로는 못하니까 성령을 받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지혜로는 불가능하니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나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복음을 전파하여 벼랑으로 떨어져가는 영혼들, 알지 못하여 불더미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 같은 인생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니 120문도가 일어나 주님의 뜻을 이뤘던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70명의 집사들, 그리고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사선을 넘으면서 주님의 뜻을 관철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 귀하고 귀한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복음을 들고 그들처럼 사선을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달려온 복음의 역사가 우리로 인하여 막힌다면, 우리 때문에 이 역사가 중단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고 해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고 우리 교단과 교회에 강조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 영혼이 실족할 때마다 제 뼈마디가 쑤시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끼는 것은, 우리 주님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얼마나 애달파하시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한 영혼을 잃어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 떼를 놔두고 그를 찾아 험한 산길을 헤매는 분입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생각해보십시오. 많은 자녀 중 하나를 잃었다고 쳐봅시다. 자녀가 많으니 하나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늘 가슴앓이를 할 것이고, 바람 소리에도 혹시 문소리인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과 바람이 진정 무엇인 줄 알면서 지옥을 향하여 가는 자들을 방치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얻은, 주님께 빚진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의 증인 삼기 위한 것입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순교자와 동일어입니다. 참된 증인이 되기 위해 순교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의 12제자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못 박혀 죽었고,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X자형의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으며,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저절로 튀어 나오는 바람에 결국 그는 밧모섬으로 귀양 보내졌고, 빌립은 소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으며,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와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린 채 못 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의심하던 도마도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고,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으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하다가 다시 유대로 돌아와 전도하던 중 활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유다 대신 열두 번째 제자의 반열에 오른 맛디아는 이디오피아에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70인의 집사들도 순교했고, 사도 바울 역시 모진 박해 중에도 오직 전도를 하다 결국 참수 당했습니다. 그들의 피가 강이 되어 우리에게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순교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요즘은 예수를 증거한다고 목을 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수 있고, 핍박을 받을 수 있고,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샘플 아닙니까?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다 저는 무인격자가 되었고, 이단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주님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주님을 뵈올 때 무어라 할까요? 저는 지옥을 본 사람입니다. 유황불이 지글지글 타는 지옥에서 아우성치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당신의 가족과 이웃을 보내고 싶습니까? 소경이 벼랑을 향하여 가는 줄 알면서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악한 자입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주님의 뜻은 먼저 구원받은 자로서 나가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고,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겠습니까?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밀알이 썩기를 거부한다면 그 밀알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됩니다. 밀알의 사명은 썩어 많은 밀알을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밀알처럼 복음을 위하여 썩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님의 증인되는 것일진대, 증인이 되지 못한다면 주 안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의 본질은 선교요, 믿는 자의 사명은 전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통로가 됩시다. 우리 교단과 교회가 복음을 땅 끝까지 나르는 루트가 됩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교회의 본질은 선교요
믿는 자의 사명은 전도다
핍박과 순교가 온다해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