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눅 5:1~11)
이번 과테말라·멕시코 집회는 정말 대성황이었습니다. 집회 장소에 인산인해(人山人海)로 사람이 몰려들어 입장을 통제해야 했고, 집회 장소 밖으로도 대형스크린을 설치해야할 정도였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뜨겁게 역사하사 인구 700만의 대도시 뚝쑬라(Tuxtla)에는 그야말로 성령의 쑤나미(tsunami)가 밀려오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저를 이곳까지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36시간을 날아 이 먼 곳까지 오게 하신 그 분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난공사에 이익이 많고, 깊은 곳에 고기가 많단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형편무인지경, 곧 빈 배로 떠있는 경우를 봅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질을 한 베드로처럼 나름대로 수고하고 애쓰는데, 늘 아무것도 잡지 못한 빈 배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빈 배가 무엇입니까? 가난하다는 것이고, 이룬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더러는 물질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영혼이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당신 인생의 배를 한 번 둘러보십시오. 배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피라미 몇 마리가 전부입니까? 그것으로 살아가려면 늘 허기져야 하고, 늘 꾸러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남에게 꾸어주며 살라고 하셨는데, 당신 배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으니 어떡합니까? 언제까지 빈 배로 있을 겁니까? 언제까지 가난과 좌절 속에 있을 것입니까? 이제라도 만선의 꿈을 꾸어보십시오. 이제라도 남의 배까지 채워주는 삶을 꿈꾸어보십시오.
만선이 되는 법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첫째, 주님이 당신의 삶 속에 오셔야 합니다. 주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증거 하시는데 무리가 옹위하자 주님이 호숫가에 있던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처럼, 우리 삶에 주님이 찾아오셔야 우리의 인생이 만선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려고 할 때, 만일 베드로가 “누구신데, 제 배에 맘대로 오르십니까?” 했더라면 예수님은 다른 배로 가셨을 것입니다. 분명히 호숫가에는 두 척의 배가 있었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대신 다른 누군가가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 인생의 배에 동승하기를 원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잘 생각해보십시오. 대통령이 당신 집에 머물고 있다면, 당신의 집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부족한 것이 있을까요? 아니요, 모든 것이 넘쳐날 것입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며, 창조주께서 당신 인생에 머무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둘째, 베드로는 가장 주님과 가까운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이 기반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고, 말씀 위에 서야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말씀은 곧 양식입니다. 떡이 육체를 위한 양식이라면,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밥을 안 먹어보십시오. 쓰러집니다.
그럼 말씀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영이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영이 육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니 결국 말씀이 없는 인생은 모든 면에서 시들해지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먹어 영혼이 잘 되면요? 당연히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요삼1:2). 즉 말씀으로 영·혼·육이 살아날 때 비로소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상고하고, 말씀 안에 거해야 빈 배를 면할 수 있습니다.
셋째,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물고기 잡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충분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곳에서 자랐고, 그물질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그물질에 관한 한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십시오. 제가 못 잡으면 아무도 못 잡는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베드로는 자신의 세상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주님 말씀 앞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이 늘 텅텅 비어 있느냐 하면 주님의 말씀 앞에 쥐꼬리만 한 내 지식이나 경험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내 지식 속에 가두기 때문에 주님이 일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이 무엇인 줄 압니까? 배설물입니다.
똥이나 오줌처럼 더럽고 반드시 배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설하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차는 것처럼,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을 배설하지 않으면 인생이 순탄치 않게 됩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최고의 학문과 학벌을 자랑하던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는 자신의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지 않았습니까?(빌3:8).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9:6).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이니, 그 앞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무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식을 버려야 하나님이 당신 인생에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깊은 곳이란 어디일까요? 깊은 곳이란 사람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이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이요, 영적으로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이방 세계를 말하는 것이며, 주님을 따라가는 좁은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 남들과 동일해서는 남들과 다른 성공을 취할 수 없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얕은 물가에서 그물질을 하고 있다면 그곳을 떠나 당신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얕은 물에서는 절대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법입니다. 그 길은 조금은 위험하고, 험난하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평생 만선의 기쁨은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좁은 길이 비록 험난하고 고통스러워 보여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곳이 가장 편안한 길이요 성공으로 이끄는 첩경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깊은 곳에 그물질을 하려고 깊은 바다로 배를 저어가려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을지 모릅니다. “이봐, 베드로. 너 미쳤어? 그물질 한 두 번 해보는 거야? 거긴 왜 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성공을 향해 목적지를 정했으면, 귀는 막고 오직 눈만 부릅뜨고 가야 합니다. 내가 받은 말씀을 부여잡고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파도가 쳐 와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서 내리시고 베드로 혼자 깊은 데로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 함께 하시듯, 우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주님이 우리 인생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복음의 소외지역인 남미나 구소련연방, 그리고 아프리카에 자주 가는 것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질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베드로가 한꺼번에 3천명을 회심시킨 것처럼,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만선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십니까? 성공하길 원하십니까? 주님을 영접하시고, 말씀 안에 순종하여 깊은 데에 그물을 내리십시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고, 다른 사람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진출하십시오. 그곳은 분명 황금어장일 것입니다. 그래서 남까지 풍족함을 주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할렐루야.
난공사에 이익이 많고
깊은 물 속에 고기가 많다
성공하려거든
귀를 막고 눈만 뜨고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