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위한 기다림은 즐겁다
작년 12월 22일,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그 날은 내가 목회를 시작한 지 꼭 23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우리 성도가 나에게 외국산 고급 자동차를 선물한 것이다. 나는 그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아직 타지 않고 있다. 그런 고급 자동차를 타는 것이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고 장문의 메일을 보낸 사람도 있었고, 하나님이 수고하신 목사님께 주시는 선물인데 그런 말들일랑 무시하고 그냥 타라고 한 장로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자동차를 아직 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이것으로 인해 시험이 들까봐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들 모두는 해산의 수고로 난 내 양떼들이요, 내게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그러자 내게 자동차를 선물한 성도는 “목사님께 자동차를 선물로 드리고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동차를 두고도 타지 않으시는 목사님을 보면서 왠지 그 자체가 은혜가 되데요. 그리고 더욱 좋은 차를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뿐이 아니다. 나에게 그 자동차를 타지 말라고 했던 자도 “목사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고백에 기뻤고 감사했다.
그렇다. 목적이 있는 기다림은 즐거운 것이다. 야곱이 라헬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7년의 세월을 하루 같이 즐겁게 보낼 수 있었고, 우리가 그 날에 있기에 오늘을 기쁨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기다리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