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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노루를 쫓는 자는 토끼에 관심 없다 ( 창 26:12~25 )

412호 · 2008-01-17

노루를 잡으러 간다고 합시다. 그러면 거기에 걸맞은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노루를 잡으러 간다고 하면서 토끼를 잡으러 가는 사람처럼 준비하고 나간다면 절대 원하는 노루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올해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기름지려면 우선 내가 기름져야 하기에, 우리는 올해의 슬로건 안에 더욱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삭이 농사를 지어 당년에 백배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자기가 종사하는 곳에서 백배로 성장하고, 잃었던 것을 백 퍼센트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백배로 축복받고, 백배로 성장하고, 백 퍼센트 건강과 행복을 회복하자’는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입니다. 아주 큰 목표이지요. 토끼를 잡자는 것이 아니라 노루를 잡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노루를 잡는 마음자세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요, 노루를 잡을 만한 도구를 준비해야 합니다.

즉 이삭처럼 백배의 축복을 받으려면 이삭처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삭은 어떻게 해서 당년에 백배의 축복을 받았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이삭은 우물을 계속, 열심히 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가 판 우물을 빼앗았을 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창26:19~21).

물이 귀한 땅에서, 더욱이 유목과 농사를 겸했던 이삭에게 우물은 곧 생명수였습니다. 당신도 이삭과 같은 생명수를 얻으려면 우물을 열심히, 깊게 파야 합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펑펑 터지는 것이 물인데, 무슨 우물을 파냐고요? 다름 아닌 기도의 우물입니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깊이하면 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인즉 주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11:9).

또 다른 약속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기도하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요?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니까요.

그런데 우물을 팔 때도 원칙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혼자 파는 것보다 여럿이 파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우물도 그렇습니다. 혼자 은밀히 하는 기도도 있지만, 합심기도는 더욱 상달되는 힘이 큽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또 우물을 팔 때 이곳저곳을 파는 것보다 한 곳을 계속 파야 물이 나옵니다. 즉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절대 주님께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그리고 파다말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물을 깊게 파면 반드시 물은 나옵니다. 동일하게 기도도 반드시 응답됩니다. 낙망하지 말고, 의심하지 않고 계속하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이삭과 같은 백배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둘째, 이삭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드린 자입니다. 즉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22:9.10). 아브라함이 결박할 때 이삭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비는 이미 나이 들어 힘이 없었고, 이삭은 힘이 넘칠 나이였으니 아비를 밀치고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망가지 않고 결박당한 채 단에 올라갔습니다.

이삭은 실제로 번제물이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번제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복을 잘 살펴보면 그 복이 ‘이삭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게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7,18). 곧 이삭을 통해서 복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6장 23절을 봅시다.

이삭이 브엘세바?올라가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사 말씀하기를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왜 하필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브엘세바는 바로 이삭이 아비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산을 향해 떠났던 그곳(창22:19)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도 보셨지만, 아비에게 반역하지 않고 제물이 된 이삭도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포도씨를 심으면 포도가 열립니다. 무씨를 심으면 무가 나지요. 맞습니다.

심어야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열리며, 많이 심으면 많이 나는 법입니다. 이삭은 자신을 심었기에 그처럼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언젠가 어느 성도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큰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둘째도 운동을 잘해서 체대에 들어갔는데, 막내가 속을 무지 썩입니다. 공부도 안하고요. 이놈은 신학교에나 보내야겠어요.” 그 말을 듣고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께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지요. 가장 똑똑하고 반듯한 자식을 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점 없고 흠 없는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삭과 같은 백배의 축복을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십시오.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린 동방박사처럼 말입니다.

셋째, 이삭은 다툼을 멀리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가 파놓은 우물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피했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26:22).

하나님은 절대 다툼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자 하나님은 서로를 떼어놓으셨고(창13:1~13), 또 이스마엘과 이삭이 다툴 때 하나님은 그들을 분리시키셨습니다(창21:1~21). 왜냐하면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잠17:14). 방축에서 물이 새면 그 방축이 제대로 구실을 하겠습니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복이 오려고 하면 악한 것들이 자꾸 딴죽을 겁니다. 시비를 겁니다. 그러나 그들과 싸우지 마세요. 이는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입니다. 물을 한 바가지만 더 부으면 아귀까지 차는데 털썩 발로 차서 깨뜨리는 것과 일반입니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3:2). 다투는 것은 우물을 파놓고 돌로 그 우물을 다시 메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다투지 말고 피하세요.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세요.

올해 우리 반드시 이삭을 본받아 이삭과 같은 백배의 축복을 받읍시다. 그래서 나로 인하여 내 가족과 이웃, 내 기업, 내 나라가 기름지게 합시다. 할렐루야!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

가장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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