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있습니까?
“이번 주일에는 꼭 교회 가야한다. 너 지난주일도 못 지켰잖아.”
“엄마, 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이제 입사한 데다 연말과 연초가 겹치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마무리 할 것도 많고 시안도 작성해야 하고….”
책상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며 출근을 서두르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말한다.
“주일성수는 믿는 자의 기본이야. 그 기본도 못한다면 문제가 있지.”
“엄마, 쫌만 봐주세요. 능숙한 선배들도 밤을 꼴딱 새면서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저 같은 신참이 어디 시간이 있겠어요? 그리고 사실 엄마한테만 말하는 건데, 우리 부장이 저한테 기대하는 바가 크데요. 얼마 전에 회식자리에서 조용히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일처리가 아직 미숙하니까 제 맘이 더 급해요.”
“우리 아들 큰일 났구먼. 내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 형편을 왜 모르겠니?
너 허구한 날 야근하고 오고, 밤새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네 얼굴이 요새 말이 아니라서 엄마는 안쓰럽지. 그러나 이것은 봐주고 안 봐주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니?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야. 그러니 아침 일찍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출근하도록 미리 스케줄을 조정하라는 거야.”
“가능한 해볼게요. 저도 교회에 못가니 마음이 편치 않아요.”
“내 아들을 비롯해 믿는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에게 내어드릴 방이 없는 듯해서 마음이 안타깝구나.”
막 윗도리를 입으려던 아들이 엄마의 말에 멈칫 한다.
“예수님께 내어드릴 방이 없다고요?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엄마는 아들의 침대에 걸쳐 앉으며,
“주님이 이 땅에 나실 때 누구도 주님께 방 하나 내어드리지 못했지. 그래서 그 귀하신 주님이 말구유에 몸을 누이셨잖니? 물론 베들레헴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호적 하러 온 사람도 있고, 장사하러 온 사람도 있었을 테고. 그러나 곧 태어날 아기에게 방 하나 내주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안 된단다.
동일하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 때문에 바빠서 주님께 시간을 내어드리지 못하고, 몸을 내어드리지 못하는 것은 핑계도 이유도 되지 못한다는 거야. 나는 우리 아들이 주님에게 방 하나 내어드리지 못한 베들레헴의 사람들과는 달랐으면 해. 내어드릴 상황이 아니어도, 내어드릴 수 없는 형편에도 주님께 선뜻 방을 비워드릴 수 있는 자가 되었으면 하는 거야. 나중에 내어드리는 거는 아무 소용이 없단다. 이미 예수님은 말구유에 나신 후니까. 나중에 잘하겠다는 거? 글쎄….”
라며 엄마가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아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엄마,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아요.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해서 주님을 위한 일을 크게 하고 싶었어요. 내가 비록 지금 교회 출석은 못하지만 하나님이 조금만 참아주시면 잘 된 다음에 크게 하고 싶었어요. 아까 내가 말했잖아요. 우리 부장이 나를 기대주로 생각한다고. 그래서 나는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부장 눈에 들기도 바랬고요. 주님을 몰라라 한다는 게 아니라 얼른 일 잘 해서 크게 잘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엄마 말씀을 들어보니 지금 당장 주님께 방을 내어드리는 게 더 중요하네요.
지금 당장 주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엄마, 이번 주일부터는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제가 했던 봉사도 가능한 한 할게요. 주님을 위하여 언제든 제 방을 내어 드릴게요.”
“그래, 고맙구나, 엄마 말에 깨달아줘서.”
엄마는 아들의 뺨을 토닥거리는데, 아들 녀석,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우당탕 뛰쳐나간다.
“으악! 엄마, 나 늦었어.”
주님이 나실 때 베들레헴에는 빈 방이 없었다. 여러 곳을 찾아도 주인들은 하나같이 다 ‘방 없어요.’ 하며 문을 닫았다. 그들은 이미 방마다 손님들이 가득했기에 태어날 아기를 배려할 생각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들어온 손님을 내어 쫓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주인 집 식구들이 기거하는 방 하나쯤은 내어드릴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설마 여관 정도 하면서 자기 기거할 방 하나 없었겠는가 말이다.
누군가 ‘제가 쓰던 방이라도 괜찮다면 들어오세요.’ 했더라면 그는 엄청난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거대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누울만한 자리 정도를 원하신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주님을 내가 자던 누추한 방에 누일 수 있는가? 나중에 돈 벌어 좋은 호텔에 모셔야지.’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주님은 내일이 아니라 장차가 아니라, 바로 ‘지금’ 방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