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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목차 › 나눔의 지혜

약속은 생명이다

412호 · 2008-01-17

영조(英祖) 때 호조판서를 10년이나 지낸 정홍순(鄭弘淳)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깐깐한 성격이지만 작은 신의(信義)마저도 저버리지 않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임금의 동구릉(東九陵) 행차가 있던 날, 정홍순도 많은 구경꾼 틈에 끼여 이 성대한 행차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가 장마철인지라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홍순은 우립(雨笠)을 마련해 갖고 갔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씩이나. 이는 혹시 비가 오는데 우립이 없는 자를 만날까 하는 배려에서였다. 그는 그날 우립이 없어 당황한 젊은 선비에게 우립 하나를 빌려줬다. 다음 날 우립을 돌려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말이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록 그 젊은 선비가 우립을 돌려주지 않자 정홍순은 이 선비를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그러자 그 선비는 우중에 사돈이 와서 그 분을 빌려드렸으니 사흘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그 선비를 다시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젊은 선비 왈 “그 낡은 우립 하나 갖고 참으로 극성이오. 내가 장사가 지나가면 하나 사드리겠소.” 하는 것이다. 그러자 정홍순은 “내가 돌려받고 싶은 것은 우립이 아니라 신의요” 하면서 백리 길이나 되는 그 젊은 사돈네 집까지 찾아가 그 우립을 찾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지 20여 년이 흘렸다. 정홍순이 호조판서로 당상에 앉았는데, 호조좌랑(佐郞)이 신임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그런데 낯이 설지 않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보았더니, 바로 20년 전 우립을 돌려주지 않았던 바로 그 선비가 아닌가? 정홍순은 그를 보고 “하찮은 우립 하나를 두고도 신의를 못 지키는 자에게 어떻게 나라의 큰 돈주머니를 맡기겠는가?”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약속을 생명처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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