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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한 해가 되자 ( 창 26:12~18 )

410호 · 2008-01-03

대망의 200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해는 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것은 꿈이 숨쉬기 때문이고, 희망이 노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올해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자’는 목적을 설정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서 있는 땅이 어디입니까? 이는 우선은 나 자신이요, 나아가 내 가정이며, 내 직장과 사업터요, 내 교회며, 내 민족을 뜻합니다. 또한 ‘기름지게 한다’는 것은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며, 소리 나지 않게 한다는 뜻이요, 넘치는 것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뜻입니다.

돌을 강물에 던지면 그 파장이 돌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퍼져나가듯 기름진 나로 인하여, 내 가족과 내 이웃, 내 교회와 민족이 동일하게 기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과 씨인지, 수박씨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간장종지인지, 국사발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내 쓰임새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과 씨는 대구 땅이 좋습니다.

수박은 광주 땅이 좋습니다. 그곳에 씨가 떨어져야 일등품이 될 수 있습니다. 간장종지면 주인 밥상에 올라 간장을 담고 있어야 행복한 겁니다. 그런데 간장종지가 자신이 큰 장독인줄 알고 장독대에 있다면 큰 장독에 치여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천덕꾸러기나 되고 말지요. 국사발이면 뜨거운 국을 담고 있어야 폼이 나는 법인데, 자신이 밥그릇인 줄 알고 떡하니 밥을 담고 있으면요?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는 법이고, 자질이 있는 법이며, 적성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찾아야 무리 없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신나게 갈 수 있고, 그것을 찾아야 100%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알게 되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인생에서 편안한 아스팔트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의 성취도도 빠를 뿐 아니라 가는 길도 신바람 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모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입니다. 입이 귀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과연 입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요?

냄새는 고사하고 얼굴모양 조차도 흉물스럽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언젠가 중국에서 공부하는 아들 녀석이 제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서양에서 온 아이들은 성적이 꽤 좋은 편인데, 동양권 아이들은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그 때 제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서양에서 온 아이들이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닐 거다. 그들이 동양권 아이들보다 더욱 많은 시간동안 공부하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런데 왜 그들의 성적이 좋으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좋아서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야.

대체로 동양권 아이들은 부모에게 등 떠밀려서 공부하는 반면에, 서양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지.”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을 해야 효과가 큽니다.

책만 보면 졸리는 아이에게 공부해야 출세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로 효과 없습니다. 그 아이를 계속 공부라는 틀 속에 가둬두면 그 아이의 인생은 기름지기는커녕 삐거덕거리고, 헉헉대기 바쁠 것입니다. 그 아이의 달란트를 찾아주는 겁니다. 분명히 잘하는 것, 신나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운동도 좋고, 악기도 좋고, 요리면 어떻습니까?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면 그의 인생이 기름지지 않겠습니까? 그와 더불어 가족이 기름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옷도 맞아야 세련되어 보이고, 신발도 맞아야 발이 편한 법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직업, 배필도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찾을 때 인생이 기름지게 되고, 넘친 기름으로 인해 내 가족과 이웃과 사회도 기름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 스승에 대한 신뢰가 내 땅을 기름지게 하는 관건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성공자를 믿고 따라가면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은 당대에 백배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그에게 스승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이 아브라함 때에 우물을 팠다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도 인정받은 자였기에(창22;12), 이삭은 아브라함을 아버지인 동시에 스승으로 섬겼고, 그를 신뢰했던 것입니다. 우물이 무엇입니까? 물이 귀한 땅에서의 우물은 곧 생명샘이고, 부의 상징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부(富)를 얻기 원하십니까? 스승이 팠던 곳을 파면, 스승을 팠던 대로 파면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승이 누구입니까? 당신이 믿고 따를 성공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방법과 뜻대로 가면 이삭이 판 우물에서 물이 넘친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과 뜻대로 간다면 반드시 우리가 선 땅이 기름지게 될 것입니다. 이삭처럼 그 해에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셋째,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기름지게 하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 이는 하나님께 심는 것에 대한 말씀이지만, 삶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조금 노력하면 적게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면 점수 잘 받는 것처럼, 인생의 모든 면에 노력하면 많은 결실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씨를 제 밭에 뿌리고, 스승의 지침을 따라 행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노력보다 더 큰 무기는 없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부를 쌓은 것은 그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또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단 52일 만에 완성한 것 역시 피나는 노력의 대가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느4:21~23). 오늘의 저 역시 노력의 산물입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이 제게 맞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의 방법대로, 뜻대로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저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씨가 땅에 묻히면 씨의 무게보다 수백 배 무거운 흙에 눌리게 됩니다. 그것을 뚫고 나와 싹을 내려면 노력해야 하고, 씨가 터지는 아픔도 견뎌내야 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넉넉해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있어야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내가 구원되었어야 남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기름져야 합니다.

미국이 많은 나라를 기름지게 했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느냐 하면 미국이 기름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힘들 때는 남의 나라에 신경을 못썼습니다. 그러나 이제 넉넉해지니 북한을 비롯해 빈민국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의 가족 70인을 기름지게 했습니다. 어떻게요? 자신이 기름졌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풍요롭고 안식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내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합시다. 오늘 말씀을 마음판에 잘 새겨 이삭처럼 당년에 백배의 축복을 받읍시다.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할렐루야!

의심은

희망을 잡아먹는 애벌레다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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