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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목차 › 교단소식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409호 · 2007-12-26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 자체가 기쁨이다. 죽을 수밖에 없던 자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병든 자에게 건강을 주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부유를 주셨으니 그 분이 우리에게 오신 자체가 기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기쁨이 없는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왜 기쁨이 없는 것일까? 이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믿음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다. 희망도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다. 다만 여러분이 믿음을 버렸고, 희망을 버렸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렸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희망봉에 오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믿음을 지키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을 놓지 마라. 그리고 자신이 왕손인 줄도 모르고 강화에 유배되어 농사나 짓던 자에서 하루아침에 왕위에 오른 철종처럼, 우리는 원래 왕가의 자녀였다.

다만 죄로 인하여 유배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셔서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가르쳐주셨다. 예수가 우리에게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다.”

총회장 목사님의 짧은 성탄 메시지에 이어 요셉의 일생을 그린 ‘꿈을 꾸는 요셉’이라는 뮤지컬이 단에 올랐다. 유치부 아이들에서부터 청년부까지 혼연일치하여 제작한 이 뮤지컬은 감동의 물결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였다.

이 뮤지컬은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재현하는 듯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리고, 또 모함으로 옥중에 갇혀있으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다. 그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다. 그래서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 대신이 되었다. 그가 믿음을,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더니 믿음도, 희망도 그를 버리지 않고 마침내 그의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2007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2007년 우리에게 주어졌던 과업 곧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의 표본이 누구인지,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꿈꾸는 사람 요셉이었고, 그에게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자신이 꾼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껏 하나님이 나를 버려 고난의 길을 가는 것으로, 꿈이 나를 배반하여 인생이 깜깜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알았다.

내가 믿음을, 희망을, 꿈을 버린 것이라는 것을. 오늘 예수중심교회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꾸민 뮤지컬은 우리에게 너무나 값지고 귀한 교훈을 남겼다.

군더더기 없는 대사, 상황을 더욱 절박하게 하는 멜로디, 그리고 간간히 펼쳐지는 환상적인 율동,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무대설정. 모두 우리 예루살렘 젊은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고, 우리 젊은이들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열약한 환경 속에서 이런 명작이 나올 수 있다니, 결국 명작은 환경이나 조건의 소산이 아니라 열정의 산물임을 다시 실감한다. 총회장 목사님은 “이런 작품을 일회성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교회 밖 세상에서 공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분명히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고 소감을 피력하셨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것으로 2008년에는 필생의 명작을 만들자. 우리가 못하는 것은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꿈을 꾸는 요셉’

그는 오늘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주었고, 우리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도 요셉처럼 믿음을 지키고, 희망과 꿈을 지켜 반드시 꿈꾸는 것에 이르고, 희망에 도달하자.

모든 영광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린다. 그리고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보낸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 7일, 건국 이래 최악의 원유 유출 사태가 발생했다. 원유 수송선과 크레인이 충돌하여 12,547kl의 기름이 무방비 상태의 해안선을 덮친 것이다. 사고는 한 순간이었지만 그 상흔은 쉬이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지대했다. 기름은 이미 땅 속 5미터 이상을 오염시켰다.

벌써부터 46종의 어족 자원이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확인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이야 어떻게든 손을 쓸 수 있겠지만, 손길이 미치지 않는 바다 속 생태계는 더욱 참혹하기만 하다. 향후 20년 정도는 흘러야 오염되기 이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니 이거야 말로 재앙이 따로 없다.

실제로 찾은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해변의 자갈들과 갯바위는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한 가득 기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갯내음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코를 찌르는 역한 기름 냄새만이 태안반도 전역을 진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해안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식당가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양식 어민들의 피해는 그 규모를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의 이웃들은 이렇게 한 겨울 엄동설한에 떨고 또한 암울한 미래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망연자실해 있는 촌로(村老)의 굵은 주름위로 한 가닥 미소가 걸리운다. 그것은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이들의 재기 의지를 한껏 북돋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열에 예수중심 교회도 함께 하였다. 각 교구와 지교회에서, 그리고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여러 봉사대가 계속해서 태안을 찾았다.

그리고는 해안 이곳저곳에 산재한 기름때를 제거하는가 하면 현장에서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방제복과 장화, 마스크 등 복구 작업에 필요한 여러 물품들을 전달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항상 생활화 해온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동사(動詞)다. 명사(名詞)가 아니다. 단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지금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 주위에 고통을 호소하는 영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랑만 하기에도 그 시간이 너무 짧다. 우리 사랑하며, 사랑을 베풀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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