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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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목차 › 잠언 에세이

새옹지마(塞翁之馬)

407호 · 2007-12-12

여보게,

반백년이 넘게 살아보니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맞더구먼. 즐거움이란 것이 영원하지 않을 뿐더러, 또 영원할 것 같던 고통도 끝이 있더군. 내가 터득한 것은 길흉화복(吉凶禍福)에는 이면이 있다는 거지. 무슨 말이냐 하면 기쁨이라는 커튼 뒤에는 슬픔이 있고, 반대로 고난 바로 뒤켠에 행복이 있다는 말일세. 그러므로 인생이란 기고만장할 수도, 그렇다고 체념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내가 세상을 통달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의 이야기를 하려는 걸세. 들어보게나.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네. 바로 오랑캐 땅 건너편이었지.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말이 그만 집을 나가 버렸다네. 오랑캐 진영으로 들어간 거야.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노인을 위로했다네. 그랬더니 노인이 하는 말이 “괜찮다. 이 일이 복이 될 줄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거야.

그랬는데 정말 노인의 말이 딱 들어맞았지 뭔가. 다음 해 나갔던 말이 다른 말과 함께 돌아왔다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지. 그런데 막상 노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네. 노인 왈, “이 일이 화가 될 지도 모르지.” 이번에도 노인의 말은 적중했다네.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지. 동네 사람들은 혀를 쯧쯧 차는데, 노인의 한 마디가 이것이었네.

“이것이 복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오랑캐가 쳐들어와 동네 청년들이 다 전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전장에 끌려 나가지 않았다네. 거기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유래되었지. 잠언에도 그와 같은 말씀이 있다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이 말씀은 기쁨과 행복에 대해 비관하라는 말씀이 아닐세. 이는 기쁨과 행복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간직하여 혹시 고통의 날이 이를 때에도 그 때를 기억하며 결코 절망하지 말라는 말씀이라네.

여보게,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누구에게서 비롯되는가? 타고난 운 탓일까? 아닐세. 하나님으로부터라네. 그 분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일세. 사무엘상 2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네. 그 분은 우리를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라네.

그 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 누구를 의지하고 따라가야 하겠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만을 위해 살며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원하는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가? 역시 하나님만을 따라가면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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