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모르는 자는 살아도 죽은 자다 ( 살전 5:15~18 )
서울 교회에 평생을 공직에 몸담다 퇴직한 박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분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은행 계좌에 문제가 생겼으니 급히 은행으로 나와 기기 앞에서 다시 전화를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박 장로님은 아찔했습니다. 퇴직금으로 받은 상당한 금액이 통장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은행 기기 앞으로 가서 전화를 받고는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돈이 다른 곳으로 이체되고 말았습니다.
보이스 피싱(Voice Pishing), 즉 전화금융사기단의 전화였던 것입니다. 장로님은 은행 안으로 들어가 하소연했으나 이미 돈은 물 건너간 상태였습니다. 멍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아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더랍니다. 당연하지요. 평생 일하고 받은 돈이 다 날아갔으니 말입니다. 그 때 장로님의 머리에 제가 했던 설교가 떠올랐답니다. “그래, 우리 목사님이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라고 하셨어.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했더니 옥문이 열렸지 않은가. 그러니 나도 감사해야지.” 하며 찬송을 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압니까? 장로님의 지인이 이 소식을 듣고는 법원에 가서 사기당한 것을 신고하라고 하더랍니다. 혹시 범인이 잡히면 신고한 사람에게 돈이 먼저 돌아온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법원에 신고는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경찰서에서 범인을 하나 잡았는데 장로님만이 유일하게 신고를 해놨으니 돈을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잃었던 돈을 고스라니 되찾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왜 장로님께 돈이 돌아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원에 신고했기 때문에요? 아닙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 감사는 선택이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할 상황이 아니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든, 어떤 경우든 마땅히 해야 할 의무사항입니다. 그 의무를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빌 바를 넉넉히 빌어주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성경에서 대표적인 인물을 고른다면 구약에서는 다윗이요, 신약시대에는 단연 사도 바울입니다.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둘 다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아니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해야 할 상황에서도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아들 압살롬을 피해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라고 감사했고, 바울 역시 그가 주리고 헐벗고 매 맞으며 세상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을 받으면서도 비천한 자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늘 감사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제가 부득불 자랑할 것이 있다면 저 역시 목회 23년을 걸어오면서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라고 표현할 만큼 제 목회는 고난과 핍박과 모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교계에서 제명을 당했고, 또 어머니로부터 내쫓김을 당하고, 가족이 떠나는 등 안팎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감사했습니다. 왜요?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으니 감사하고, 또 더욱이 당신의 거룩한 종으로 부르시고 제게 능력을 주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나타내게 하심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제가 겪은 고난과 아픔이 아무리 크고 거세다 하더라도 제가 받은 은혜를 무너뜨릴 수 없었고, 제 입의 감사를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감사할 때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 같이, 사도 바울이 감사할 때 빌립보 옥문을 여심 같이, 하나님은 저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하시고, 저를 통해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케 하셨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도토리를 심으면 도토리가 나듯, 무씨를 심으면 무가 맺히듯 감사를 심으면 감사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 그것이 진리임을 여실히 알았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물론 도토리를 얻기까지, 무가 맺히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참고 견디면 열매는 꼭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늘 감사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감사를 심지 않고 불평을 심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볼까요? 먼저 종 되었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그들은 애굽 군대가 쫓아오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몰았느냐고 불평했고(출14:11),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으며(출15:24),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모세를 향하여 원성을 높이는(출16:2) 등 그들의 불평은 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원성과 불평을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게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7, 28).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땅을 탐지한 날수 즉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사십년간 광야에 거하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자들이 광야에서 죽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민14:29~38).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는 다윗을 상대로 늘 불평했습니다(삼상18:8). 골리앗을 물리쳐준 다윗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를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아들과 함께 전장에서 죽게 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 당신 인생이 지연되는 것, 당신 인생이 물 없는 광야 같이 삭막한 것은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인생과 신앙의 항암제요, 방부제며, 소독제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늘 악한 것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소독하며, 썩지 않도록 하며, 걸림돌이 없도록 제거하는 것이니 모든 일에 형통하고, 만사가 승승장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감사는 삶의 복합비료입니다. 벌레도 죽이고 잎이 무성하게 하며, 열매가 주렁주렁하게 하는 비료 말입니다. 감사하면 인생에 거대한 수확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거리가 없다고요? 당신에게 아침 햇살을 주심도, 저녁에 달을 주심도,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심도 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아들을 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시136).
내 주위에도 감사를 표합시다. 가정을 위해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돈 버느라 힘든 남편에게 감사하며, 잘 자라주는 자녀들에게,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하신 부모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직장 상사, 부하 직원에게 감사합시다. 목사님께, 그리고 성도님들께 감사합시다.
불평은 안 가르쳐줘도 잘 합니다. 왜냐하면 불평의 원인이 악한 것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안 가르치면 모릅니다.
예수님이 문둥병 열 사람을 고쳤는데 아홉은 그냥 가고 사마리아 이방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드렸지 않습니까?(눅17:17). 그러니 감사를 가르치고 감사를 습관화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조상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험한 파도를 헤치고 왔으며, 고난 중에 거둔 첫 수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삶 속에서 불평거리를 찾지 말고, 감사할 거리를 찾읍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더 큰 감사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매사에 감사하며 삽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할렐루야!
불평은 성난 파도와 같으나
감사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