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혼자야!
여보게,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혼자라는 거야. 누구와 함께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손 쳐도 그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지. 내가 혼자라는 것을 가장 절감할 때가 어느 때인 줄 아는가? 집회를 끝내고 혼자서 숙소로 돌아올 때지.
마치 밀물처럼 사람들이 집회 장소에 들어와 한바탕 은혜의 잔치를 벌이고 난 뒤 썰물처럼 한꺼번에 쑥 빠져나가고 나 혼자 숙소로 돌아오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이 뼈 속까지 파고들지. 그 마음을 누가 알까? 남들은 내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 내게는 누구도 같이 해줄 수 없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남모를 고통과 고뇌가 있다네.
그럴 때면 잠언의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지.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정도의 차이겠지만 누구나 나 같은 외로움을 느낄 걸세.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생겨났을 거야. 내 말에 공감하는가? 사랑하는 부모든, 아내든, 자식들이라도 결국 나를 이해하는 단계까지지, 그들이 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여보게,
그러나 내가 마냥 외로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고통 중에 거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채우지 못하는 공허까지 다 채워주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네. 인생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내 속에 거하셔서 나의 친구가 되시고, 나의 위로자가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다시 일어서는 거라네.
하긴 사람의 위로를 무엇에 쓸까? 사람과 고통을 나눈들 그 고통이 사라지고, 사람과 외로움을 나눈들 그 외로움이 사그라질까?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하나님이 보듬어주어야 진정한 기쁨 중에 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인생은 개체라네. 사는 동안 서로에게 가족이요, 이웃인 게지.
다 각자 개체인 셈이지. 그러니 외롭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네. 하나님과 동거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 분의 사랑과 배려로 인해 이깟 세상의 고통과 외로움은 능히 이겨낼 것일세.
그러니 누구에게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하지도 말게나. 외로움에 사무쳤다고 토로하지도 말게나.
우리 하나님이 다 아시니 그 분의 위로하심으로 족하세나.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그 분 품안에, 그 분 그늘 안에서 살아가세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기를 원하노라”(살후2:16,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