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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왜 하나님은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엡 5:15~21)

402호 · 2007-11-07

예수를 믿기 전, 저는 술고래였습니다. 1년 365일, 술통은 짊어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갈 정도였고, 술집에 술이 떨어지나 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나 하는 호기를 부릴 정도로 술을 엄청 좋아했고, 많이 마셨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참 많았고, 낭패도 많이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나니 그 달던 술이 싫어졌고, 그래서 끊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너무도 술이 그리운지라 평소에 다니던 술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술집을 막 들어서려는데 제가 잘 아는 사업동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요. 제가 예수 믿고 술을 끊었다고 공언한 바 있었거든요. 또 믿는 자가 술을 마시면 죄다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도망치듯 한참 차를 몰고 나와 차 안에서 엉엉 울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다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목사가 술 얘기를 하나 싶으시죠?

오늘은 술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사실 목사로서 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많은 성도들을 상담하면서 ‘아, 이것을 제대로 가르쳐야겠구나.’ 싶었기에 오늘 결단하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술로 인해 성도들끼리 정죄를 한다던가, 술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를 나갈 수 없다든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술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다.

당세에 완전한 자요, 의인이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노아,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인류의 시조가 된 노아가 술로 인해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40주야나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대지에 물도 빠지자 노아와 가족들은 포도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그만 노아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인 함이 이를 먼저 발견하고는 그의 형제인 셈과 야벳에게 고하니, 그 두 아들이 뒷걸음 쳐 들어가 아비의 하체를 덮고는 얼굴을 돌이키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술이 깬 노아가 이를 알고는 함을 저주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5). 그 아프리카의 자손들이 바로 함 족속의 후손들 아닙니까? 물론 성경에는 노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언급은 없으셨지만, 하박국의 말씀에 비추어 노아의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증명합니다.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합2:15). 술이란 이렇듯 이성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식을 잃게 하여 불미스런 일에 노출되게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롯과 그의 딸들만이 소알성으로 피신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소알성에 있는 것조차 불안했던 그들이 산에 올라 굴에 머물게 되었는데, 롯의 딸들이 의논하기를 “배필 될 남자가 이제 없으니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다음날 작은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후손이 저주 받은 모압 족속이요, 암몬 족속입니다(창19). 술은 또 방탕하게 하고, 향락에 빠지게 하며, 판단을 흐리게 하고(잠31:4,5), 거만하게 하며(잠20:1), 해를 당하게 합니다(잠23:31,32).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의 명단에도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와 더불어 술 취하는 자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술 마시지 말라’는 절대적이고 단정적인 경고의 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을까요? 그 사연인즉, 조선조말엽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니 술을 대접째 마시고, 늘상 취해 있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많은 제사로 인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선교사들이 금주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가 오늘의 주안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을 마시면 무조건 죄요, 정죄의 대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종교는 그 나라의 문화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유대인들이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포도주는 식생활의 습관이요, 풍습입니다. 지금도 서양에서는 음식과 함께 포도주가 곁들어집니다. 또한 특별한 날이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상례입니다. 주님도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를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다 죄를 짓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서양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한 잔의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자!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이 어느 레스토랑에 갔는데, 같은 교회 성도 내외가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들의 모습을 본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니, 집사가 되어가지고 웬 술이야? 저 집사 내외는 회개해야 돼.” 하실 겁니까? 아니면 “오늘이 무슨 좋은 날인가보구나.” 하실 겁니까? 당연히 후자여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절대 그것은 정죄거리가 아닙니다.

이는 ‘술 마시는 것을 허용해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절제된 술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덕이 되지 않을 때는 예외가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약술’이라는 말이 있는데 성경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가 위장병을 앓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바울이 치유 수단으로 디모데에게 약간의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합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5:23).

저도 제 선교일행인 한 전도사가 잦은 위장병으로 해외집회 때 고생하면 포도주를 조금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아프던 그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술을 마시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때 있는 사람은 목욕탕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나 같습니다. 때가 많으니 목욕탕을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가 많은 자니 교회가,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나오세요. 저도 술에 취해서 교회에서 잤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제가 지금 목사가 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라도 교회의 문턱을 넘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술 끊고 나오려고 지체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 나오세요. 교회에 나오다 성령을 받으면 다 끊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바로 샘플 아닙니까?

금주가 구원의 조건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모습은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답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야 할 우리가 술 냄새를 진동한다면야 어찌 믿지 않은 자에게 본이 되고, 덕이 되겠습니까?

무엇에든 절제가 필요한 법, 그래서 베드로가 믿음 위에 덕을 강조한 것입니다(벧후1:5~7).

오늘 말씀은 잘 새겨야 합니다. 술에 취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약으로, 화목한 분위기를 위해 마시는 경우마저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라는 것이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남의 눈의 티를 보지 말고

내 눈의 들보를 보아라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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