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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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목차 › 옹달샘

집중력이 문제야!

398호 · 2007-10-10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는 머리를 떨군다. 거의 좌절에 가까운 얼굴이다.

“며칠 밤 새워 공부했는데….”

이것을 본 친구가 위로하듯 어깨를 치며

“너무 낙심하지 마. 이럴 때도 있지, 뭐.”

한다.

“넌 이번에도 1등이지?”

친구는 성적 잘 나온 것이 미안한지 쓱 한 번 웃고 만다.

“나는 왜 안 되지? 왜 성적이 안 오르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컴퓨터도 별로 안하거든. 거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머리를 두 손으로 뜯으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에 친구가 입을 연다.

“있잖아. 내가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그런데 네가 혹 잘 난 척한다고 할까봐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말해도 될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친구에게 아이는 보채듯 말한다.

“얼른 말해봐, 뭔데?”

“사실 말이야. 내가 너를 유심히 봤거든. 넌 참 성실한 편이야.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지. 그런데 매번 성적이 나올 때마다 네가 원하는 수준에 오르지 못하는 걸 보면서, 왜 네 성적이 안 오를까 생각해봤어. 그건 말이야.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넌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집중하지 않는 편이야. 공부시간에 널 보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듯해. 물론 네가 산만하다는 건 아냐. 다만 공부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거지. 잘 생각해봐. 네가 아까 며칠 밤을 새웠다고 했는데, 집중해서 공부를 했는지 아니면 그냥 밤을 새웠으니까 하는 위로만 남았는지 말이야.”

“네 말을 듣고 보니까 그러네. 난 얼마나 많이 공부했느냐를 얼마나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느냐로 생각했어. 맞아. 난 쉬는 시간에도 책상을 떠나지 않고 책을 붙들고 있었는데, 넌 애들 하고 장난치고 매점도 다녀오고 그러는데 늘 성적이 좋지.”

“내 자랑 같아서 말하기 곤란하지만, 나는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너보다 훨씬 적어. 그렇다고 내가 머리가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지. 그런데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나는 공부하는 시간에는 집중하지.

반드시 저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지금 다 외워야겠다 하는 심정으로 몰두하거든. 나는 성공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의 결과라고 생각해. 내가 너무 말이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냐, 나는 정말 몰랐었어. 늘 불안하니까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하고, 책을 보기는 하지만 몰두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어떤 때는 분명히 그 페이지를 읽었는데도 그 페이지에 있는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지.

나는 그것이 내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래, 집중하지 않아서 그랬어. 정말 고마워. 오늘 네가 내게 귀한 것을 깨닫게 했어. 오늘 집에 가서 책상머리에 써놓을 거야. ‘성공은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집중력의 결과’라고.”

“그럼 다음 달 네 성적을 기대해도 되겠네?”

“그래. 기대해도 될 것 같아. 문제를 해결했으니 말이야. 성적 잘 나오면 내가 떡볶이 쏠게.”

“오케이~”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마19:30) 라고.

우리는 “나는 모태신앙이다.”, “나는 예수 믿은 지 40년 되었다.” 라고 신앙경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나와 무관이다.”

얼마나 주를 위해 열심을 냈는가, 얼마나 주님을 위해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오래토록 열심히 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와 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과 삼시에 들어와 일한 사람, 그리고 육시와 구시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 일을 마치고 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그러자 아침부터 일한 자가 불평을 토로한다. “쟤들은 늦게 왔지 않느냐? 그런데 왜 같은 돈을 주느냐?” 그러자 주인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했고, 주었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저 사람의 품삯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니 참견마라.”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사실 아침에 일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공치는 것이 예사다. 그런데 삼시에 불러주니, 더욱이 육시와 구시에 불러주니 일꾼들이 감사하여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을까? 분명히 땀 한 번 닦지 않고 일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저런 자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 “저 사람은 인간 말종이야.” 했던 자를 주님이 부르셨다면 그가 어찌 살겠는가? 그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겠는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지 않겠는가? 그 한 목숨 바쳐 봉사하고 헌신하지 않겠는가?

삽으로 오랜 시간 땅을 파는 것보다 포클레인으로 파 들어가는 쪽이 낫다. 그저 주일 성수나 간신히 하는 평생 신자보다 물불을 안 가리고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늦게 된 자가 백 번 낫다. 그런 자가 나중 된 자로 먼저 되는 것이다.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을 때 믿음의 연배대로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안일한 신앙생활을 버려야 한다. 편안한 신자의 길은 벗어나야 한다. 지금 열심을 내고 최선을 다하여 주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전도해야 그 날 면류관과 상을 얻으리라. 착하고 충성된 자라 칭함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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