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원인은 무지에 있다 ( 마 28:16~20 )
어느 산골에 두 가정이 나란히 살고 있었습니다. 워낙 산골인지라 두 가정 모두 겨우 끼니만 때우며 사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은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다른 한 집은 아이들을 나무하러 보내고 텃밭을 일구는 일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집은 형편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등록금을 챙겨야 하니 부모의 고생은 말할 수 없었고, 어린 것들도 끼니를 굶고 두어 시간씩 걸어 학교에 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본 옆집 사람이 “왜 저렇게 힘들게 사는지 몰라. 애들은 애들대로 고생하지, 부모는 또 이게 뭐야? 저게 어디 사람 사는 거야?” 라고 답답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아이를 고등학교까지 보냈습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운 마을의 농협에 취직을 하여 돈을 벌어오니 둘째는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둘째가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되자 그 집의 형편은 날로 좋아졌고, 결국 부모님을 모시고 도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꾸리는 이들을 바라보던 옆집 아줌마가 부러운 듯 말했습니다. “당신네들이 옳았어. 나도 애들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일년지계(一年之計) 막여수곡(莫如樹穀)이요, 십년지계(十年之計) 막여수목(莫如樹木)이요, 종신지계(終身之計) 막여수인(莫如樹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 해의 계책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책으로는 사람을 심는 것이 으뜸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심는 일이란 곧 교육이며, 이는 곧 교육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도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입니다. 좁디좁은 땅덩어리에서 그것도 허리가 잘리고, 그 중에 70%는 산인 우리나라.
변변한 부존자원 하나 없는 이 나라에 오늘의 영광이 있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보우하심이 절대적이었지만, 우리 부모님들, 특히 어머님들의 높은 교육열이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어머님들은 6.25전쟁 중에도 다른 것은 다 버렸지만, 아이들 책과 재봉틀은 이고 피난길에 오르셨습니다. 재봉틀 질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그러셨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이 된 것입니다.
제가 아프리카 집회를 가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돼지는 그냥 놔둬도 돼지가 됩니다. 개도 그냥 놔둬도 개가 돼요. 그러나 사람은 그냥 놔두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가르쳐야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배워야 사람이 됩니다. 교육부재현상은 곧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밀가루 한 부대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막에 물길을 내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래야 전염병을 퇴치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언제까지 물고기 몇 마리씩 던져줄 겁니까?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막도 천사의 도시(Los Angeles)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교육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것임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니까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쳐야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겨울철이면 그냥 먹고 놀았습니다. 할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농촌의 겨울은 굉장히 바쁩니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화훼류나 채소류를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농부들이 지식을 습득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로 인해 농부들의 소득이 늘어나서 웬만한 도시 근로자들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잠8:10).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금덩어리가 궤짝 속에 가득히 있는 것이 자식에게 한 권의 경서(經書)를 가르침만 못하고, 자식에서 많은 돈을 주는 것이 한 가지 재주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드린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세상적인 지식도 가능한 많이 알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실 때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서 보내셨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하셨고, 귀신을 쫓으사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셨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가슴에 안으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 후에 세상에 나가 그것을 그대로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고기 잡던 시몬을 사람 낚는 어부, 곧 사도 베드로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런 그가 나가 전할 때 한꺼번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상식으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알아야 가르치고 훈계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은 주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0,41).
아는 것이 없으면 눈 뜬 장님과 같습니다. 70년대, 제가 살던 방배동 일대가 거의 농토였는데, 개발붐이 일자 땅값이 급등했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서 땅을 사러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동네 어르신 한 분도 땅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이 어르신이 까막눈이란 것을 알고 사기꾼이 와서 감언이설로 속이고는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가지고 간 것입니다.
이 어르신이 글을 모르니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눈 뜨고 땅을 도둑맞았지 뭡니까. 무지가 죄지요. 이 어르신을 보고 ‘쯧쯧’ 혀를 차는 당신도 눈 뜬 장님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43:8).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당신도 눈 뜬 장님이요, 무지한 자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눈을 뜨고도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귀를 열고도 자동차 클랙션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야로 말씀을 상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제가 한 달에 반 정도를 해외집회에 다니는 것은 이 말씀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먼저 배운 자가 전하지 않는다면 어찌 죄 없다 하겠습니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원하는 분야에 대해 학습하십시오. 신분상승을 원하십니까? 배우기를 늦추지 마십시오.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은 신분상승의 도구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에 지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이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아무리 좋은 옥이라도 그것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 값어치는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갈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인물과 품성과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지식이 겸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지식을 익히고 함양한다면, 그는 지식인으로서, 능력자로서, 인재로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잠24:5). 할렐루야!
교육부재현상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
안 하는 것이냐
못 하는 것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