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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젊은 테레사

388호 · 2007-08-01

“결혼하지 않고 두 아이를 입양해서 친자식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재판정의 목사님에 대한 추방령이 선고된 이튿날 아침, 밤잠을 설친 나빈 선교사는 번민에 싸인 채 화장실에 앉아있었다. 그는 속이 탔다.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추방된다면 그동안 중앙아시아에 집중해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때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지난 3차 집회에 찾아와 큰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내린 눈으로 교통이 막히는 바람에 두 주간 함께 기거하며 알게 된 변호사 자나라(Janara, 31세)였다.

그녀는 비시켁으로부터 약 700km 떨어진 도시에서 왔는데, 4년 전 성탄절에 어느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에서 이초석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는데, 귀신이 떠나가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TV를 꺼! TV를 끄란 말이야!”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네 속에 귀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격분한 자나라는 주방에서 칼을 들고 와 주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이에 주인을 비롯한 모인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주었다. 그 날 그녀는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이초석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지난 3차 집회에는 직접 700km를 달려와 집회에 참석하였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나중에 마을로 돌아간 그녀는 여러 청년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청년들을 조직적으로 교육시켜 마을 청소도 하며 도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단다.

그녀는 이번 집회에도 참석하였고, 지난밤에 있었던 쿠진 교회 세미나에서는 단에 올라와 목사님 주머니에 용돈까지 넣어드렸다.

나빈 선교사는 바로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자나라에게 한 번 부탁해보자.’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간,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집회도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스쿨 호수에 들러 좀 쉬었다가 갈려고 한다’고 인사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역사였다. 나빈 선교사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이스쿨은 나중에 가고 목사님 문제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하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재판이 어제 늦게 끝났기 때문에 아직 정식으로 처리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러니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가서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

그러자 자나라는 ‘왜 진작 자기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하며 ‘자기가 가서 알아보겠다.’고 흔쾌히 나서주었다.

준비를 하고 목사님을 모시러 숙소로 가는 길에 나빈 선교사에게 자나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재판 기록을 보았는데 목사님께 매우 불리한 재판이었어요. 이의를 제기하여 무효화 시킬 방도가 있을 것 같아요.”

신이 난 나빈 선교사는 그 즉시 목사님을 모시고 변호사 자나라와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

목사님은 스케줄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하니 자나라에게 위임장을 써주면 자기가 남아서 재판을 무효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법원에서 일을 보는 중에 자나라로부터 매우 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였다. 그런데 두 아이를 입양해서 친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14살짜리고, 또 한 아이는 이제 겨우 1년 5개월 된 갓 난 아이였다.

처녀의 몸으로 시집갈 생각은 하지 않고 아이들을 입양하여 키우니 부모나 가족들이 가만있겠는가. 자나라가 미쳤다고 펄펄 뛰며 야단이라고 한다. 부모의 심정으로야 당연한 반응이리라.

목사님은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 곱고 아름다워서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순간 자문자답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나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내 딸이 저런다면 이해하고 성원을 보내줄 수 있었을까?’

이는 예수의 심장을 가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목사님은 깊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나라도 저렇게 했을 거야.’

“슬라바 목사, 자네 딸 루다가 저런다면 자네는 어떻게 했겠는가?”

슬라바 목사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저라도 저렇게 했을 겁니다.”

자나라는 그러나 매우 겸손했다. 그냥 그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치 오직 일평생 낮은 곳만 바라보며 보이는 것은 오직 돌보아야할 영혼들뿐이었다고 말했던 마더 테레사를 보는 것 같았다.

자나라는 앞으로 국회의원의 꿈을 갖고 있으며 나중에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과연 그래도 되는지 묻는 어린아이 같았다. 목사님은 그녀를 꼭 안아주며 ‘네 꿈을 마음껏 펼쳐보라’고 격려하셨다. 그녀와 헤어지고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그녀를 떠올리며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인가?”

“진정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진정 하나님께 보답을 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에 답 대신 자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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