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는 저주는 무섭지 않아
여보게,
살다보면 애매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지.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하니 악한 것들이 내게 마구 저주를 퍼붓더군. “3년이면 이초석은 망한다.”, “길어야 7년이다.” 라고 말이야. 사실 내가 망해서 자기네들이 좋을 것도 없고, 이로울 것도 없을 텐데… 까닭도 없이 저주를 내게 억수로 퍼부어대더군.
그러나 내가 어디 망했는가? 그들의 저주가 내게 임했는가? 아닐세. 난 이렇게 흥하고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왜 그러는 줄 아는가? 그들의 저주는 마치 표적 없이 마구 쏘아댄 화살과 같기 때문이지. 마구 쏘아댄 화살이 제 자리에 꽂히는 것을 보았는가?
잠언에는 까닭 없는 저주를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다네. 들어보게나.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원한이 맺혀 저주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터인데, 하나님이 아무런 까닭도 없는 저주가 꽂히고 임하도록 하실까? 절대 그렇지 않다네.
오히려 그 저주가 다시 돌아 자기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 말이 주인을 찾아가는 원리지. 뿌린 자가 거두는 원리 말일세. 나를 저주하던 자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그들이 뿌린 대로 지금 다 망했다네. 더러는 내게 손을 벌리러 오는 사람도 있다네. 어쩌면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는지….
여보게,
남을 사랑하고 축복만 하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네. 그 짧은 시간동안 왜 남을 헐뜯고 그것도 모자라 저주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 남을 저주하려면 내 마음부터 저주가 임한다고 나는 생각하네. 저주하는 말을 할 때 그 마음은 이미 지옥일 테니까. 밝고 깨끗한 마음에서 저주가 나올 리 없으니 말일세.
우리 서로에게 약속을 하세나. 우리는 절대로 남을 저주하지 말자고. 까닭 없는 저주는 물론이고, 혹 정말 한을 품게 한 사람에게까지도 우리는 저주 대신 축복을 해주세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나도 처음에는 잘 안 되더군.
인간의 힘으로야 당연히 어렵고 안 되는 일이지만 날 위해 대신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 주님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우리 그렇게 해보세나.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양 잡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네.
목에 칼을 들이대도 아무 소리 하지 않는 양의 모습에서 나는 예수님을 보았지. 목이 메이더군. 우리 그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바르게 살자구.
우리의 입은 남을 저주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네.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의 말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이라네. 그러니 우리 악한 데 입을 벌리지 말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