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388호 목차 › 커버스토리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한다

388호 · 2007-08-01

외마디 소리조차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양의 모습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미리 암시하는 복선이었다고나 할까?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인 스타디움 집회를 마친 우리가 키르기스스탄 경제인협회 라이칸 회장의 집에 초대를 받아갔다가 목격하게 된 그 장면은 드라마틱했던 그날의 하루를 마감하며 새삼 떠올려지는 영상이었다.

라이칸 회장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저녁 스케줄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 6시쯤 목사님 방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러시아말이기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초석” 하고 확인을 구하는 말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자 전화는 곧 끊어졌다. 성도 중에 누가 찾는가보다 하고 있는데 잠시 후,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두 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급히 슬라바 목사를 불렀다. 그들은 정보부(구 KGB) 요원임을 밝히고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날 우리 여권은 카자흐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여행사로 보내져있었다. 여권이 없다고 하자 그들은 연행해서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여권이 없는 연고로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빈 선교사는 급히 울란 집사에게 뒷일을 맡기고 목사님을 따라 나섰다.

지난 2002년 2차 집회 때도 같은 사건이 있었다. 그 때 나빈 선교사는 추방될 것을 두려워하여 KGB로 연행되는 목사님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에게 늘 마음의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곤경에 처한 스승을 외면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목사님은 나빈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빈은 그럴 수 없었다. 이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목사님과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음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3개 교회를 세우고 목사님을 모셔다 집회까지 열면서 막 부흥의 기회를 맞이했었다. 그러나 목사님에 대한 5년 추방령과 함께 그도 우즈베키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도 가보았지만 자신이 뿌리를 내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에 키르기스스탄 비시켁으로 들어와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어 지난 3차 집회에는 비시켁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체육관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하였다. 교회도 계속 성장하여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비시켁 예수중심교회는 나날이 부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목사님이 추방된다면 이제 또 어디로 가야하나 하는 아득한 생각이 몰려왔다고 한다.

목사님과 통역관 슬라바 목사, 그리고 나빈 선교사가 연행된 곳은 사방이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었다. 조명도 매우 어둡고 가운데 덩그러니 낡은 책상만이 놓여있었다. 하다못해 앉을만한 의자조차 없었다. 그곳으로 연행되는 중에 목사님은 슬라바에게 다짐하듯 말씀하셨다.

“비록 우리가 감금 되더라도 나빈은 풀려나야 한다. 비록 우리가 추방되더라도 나빈은 추방되어서는 안 된다.”

목사님은 조사 받는 중에도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저 사람(나빈)은 아무 죄가 없으니 풀어주기 바란다.”

목사님 생각에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고 성장의 기반을 잡아가고 있는데 만약 또 추방되어 교회가 깨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의자도 없는 취조실에서 4시간 가까이 취조가 계속되었다. 목사님은 경색된 분위기를 다잡으시며 그들에게 ‘의자라도 갖고 와 좀 앉아서 하자’고 요구하셨다. 그들은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딱딱한 나무의자를 가져다주었다.

문제가 된 것은 집회 광고지에 ‘병을 고친다’고 적힌 문구에 있었다.

의료면허도 없는 자가 불법의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집회를 탄압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법은 법이었다. 더구나 회교국가에서 그것에 대해 아무리 항변해봐야 그들이 받아줄 리도 만무했다.

목사님은 반복되는 취조를 가로막고 조사관 중 한 사람에게 단독 직입적으로 질문하셨다.

“당신은 길을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 달라.”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몰아붙이던 한 조사관이 다른 사건으로 자리를 뜬 사이에 좀 온건해 보이는 다른 조사관에게 질문하신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그는 담담히 말해주었다. 정부 최고위층이 개입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후진국들이 그러하듯 법보다 권력이 상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그날 밤에는 다행히 여행사에 맡겼던 여권이 아직 대사관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다시 찾아온 여권을 보여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에도 다시 불러들였고, 세 번을 끌려 다닌 끝에 결국 재판정까지 가게 되었다. 저녁에는 쿠진 목사 교회에서 세미나가 계획되어있었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5시부터 교회에서 기다리던 성도들은 3시간 가까이 목사님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재판을 맡은 여판사는 피의자가 외국인이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고측인 KGB요원들은 급조된 국선변호인을 구해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목사님은 오직 한 가지 입장만 견지하셨다.

방문목적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왔다.”고 당당히 답하셨다.

그리고 불법의료행위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사실 관계를 인정하고 키르기스스탄의 법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하셨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나는 러시아말을 모릅니다. 광고지에 적힌 문구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 법을 존중하기에 만약 법을 어긴 부분이 있다면 달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선처를 바랍니다.”

여판사는 의료행위를 하고 돈을 받는지 물었다.

목사님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노우”라고 답하셨다.

법정에 대한 매우 정중한 태도와 아주 단호하게 원칙을 밝히는 목사님의 자세에 여판사도 처음과는 달리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재판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서기는 비웃는 듯한 태도였지만, 국선변호인은 매우 감동을 받은 듯, ‘이러다 나도 예수를 믿게 될까 걱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결국 판결은 추방령으로 결말이 났다. 외국인이 자국에 들어와 불법행위를 했으므로 추방한다는 것인데, 다행히 시한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재판이 끝나자 곧 풀려날 수 있었다.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이 목사님이 오시기를 학수고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카자흐스탄 대사관에 들러 여권을 찾아 바로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제 시간에 처리가 되지 않아 또 시간을 지체해야 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하기로 했던 세미나는 결국 3시간이 지나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진행할 수 있었다.

목사님이 교회에 도착하시자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목사님을 맞이해 주었다. 마치 초대교회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옥에 갇혔던 사도들이 풀려나왔을 때 예루살렘 성도들이 보여주었던 그 장면 그대로의 감동이 다가왔다.

성령은 뜨겁게 역사해 주셨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모하는 비시켁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단비를 마음껏 쏟아부어주신 것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고, 특히 15년 동안이나 손 마름병으로 아무 일도 못하던 여인이 귀신이 떠나가며 손이 펴지는 대역사가 나타나자 성전은 그야말로 천국의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끝으로 작별을 고하며 추방령을 받고 떠나감을 알리고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는 목사님의 마지막 멘트에 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뜨겁게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작별이 못내 아쉬운 그들은 저녁만찬장까지 몰려와 목사님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안타까워했다.

목사님은 비시켁을 떠나시며 “키르기스스탄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반드시 이 나라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듯 말씀하셨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와도 예수 그리스도는 증거되어야 한다’는 목사님의 외침이 만년설을 이고 비시켁을 굽어보고 있는 웅장한 텐산산맥을 따라 크게 메아리치는 듯하였다.

키르기스스탄을 통해 중앙아시아 및 중동의 회교권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깃발이 휘날리는 대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388호 다른 글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