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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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돈도 너를 보호하리니 ( 전 7:12 )

387호 · 2007-07-26

중국에 늙은 부자 영감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그 중에 셋째 아들이 타지에 나가 그만 범죄 하게 되었는데 그 죄가 막중한 지라 그만 사형선고를 언도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거액을 지불하면 보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이 애간장을 태우던 가족들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가족들은 안도하며 모두 모여 ‘누구를 보내야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를 놓고 회의했습니다. 아버지가 가면 가장 좋겠지만 너무 연로하여 긴 여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장남이 가장 믿음직하니 장남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했고, 장남 또한 자신이 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의견이 달랐습니다. “큰아들 녀석은 안 돼. 차라리 막내를 보내는 것이 나을 거야.” 아버지의 의견에 형제들까지 나서 ‘철없는 막내가 가서 일을 망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고 반대했고, 결국 장남이 거액을 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셋째 아들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왜요? 장남은 물론 거액을 가지고 셋째가 있는 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보석금이 너무 많다고 여겨 그들과 흥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남은 아버지와 함께 돈을 버느라 죽도록 고생했기에, 그에게 있어 돈은 피와 같았습니다.

그런 돈을 다 내주자니 가슴이 아려서 한 푼이라도 적게 주려고 흥정을 하다 그만 사형 집행일을 넘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시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는 가족들에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큰애를 보낼 때 나는 벌써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아이는 절대 큰돈을 쓸 수 없는 아이야.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쟤는 알거든.”

돈은 귀한 것입니다. 더욱이 어렵게 돈을 번 사람에게 돈은 생명과도 같기에 쉽사리 주머니를 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때가 있는 것처럼, 돈을 쓸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돈을 아낄 때가 있는 반면, 돈의 액수를 따지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대로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전3:6). 생명이 담보가 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92년에 일어난 L.A 폭동 때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다쳤습니다. 물론 청량리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 한 격으로, 백인에 대한 흑인의 항의가 애꿎은 한인 쪽으로 번졌지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 사회가 많은 타격과 인명피해까지 입은 것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어서 피하라는 경고에 “어떻게 가꾼 가게인데 버리고 가느냐?”, “어떻게 번 돈인데 폭력배들에게 내줄 수 있느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그래서 많이 당한 것입니다.

돈이 생명보다 우선일 수 없습니다. 돈을 택할 것이냐, 생명을 택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당연히 생명이 우선입니다. 명예냐, 돈이냐의 선택 길에서 명예가 선택되어짐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습니다만, 생명은 다시 얻을 수 없고, 명예 또한 다시 얻기란 심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주의 종의 말에 전 재산을 포기하고 생명을 취했지만(왕상17),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리석게도 돈을 택하다 생명을 잃었습니다(행5).

돈을 왜 못 쓰는 줄 압니까? 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좋아할 수는 있지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돈은 충실한 종일뿐입니다. 배반하지 않은 충신 말입니다.

어떤 구두쇠가 있었습니다. 그는 먹지 않고 쓰지 않아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매일 밤 그는 돈을 만지작거리는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 돈을 다 금으로 바꾸어 마당을 파고 거기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 마당을 밟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 그것을 다 가지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한 그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러자 동네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잊어버린 것이 억울하면 이렇게 하게나. 돌을 그 땅에 묻는 거야. 그리고 그것이 금덩어리려니 생각하라고. 어차피 그 금덩이는 쓸 것도 아니었잖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물론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진리입니다.

록펠러는 55세에 세계적인 갑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사업에만 몰두하였고, 그로 인해 갑부가 되었을 때, 그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습니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앞으로 10년을 살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그동안 돈 버느라고 잠 못 자고, 숱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육체가 상했으니 이제부터는 돈을 쓰십시오. 남에게 베풀며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얼마나 돈을 가졌느냐 보다는 돈을 얼마나 가치 있게 쓰느냐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록펠러는 그 말을 듣고는 보육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대학과 병원을 설립했으며, 수없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더니 10년을 넘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비웃듯 그는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돈 버는 일에 계속 혈안이 되었더라면 그는 곧 죽었을 것이고, 그 돈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예수께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값은 300데나리온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차라리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면 낫지 않겠느냐?” 그러나 주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마26:11). 그래서 이 여인은 영생을 얻음을 물론이고 주님과 함께 그의 이름이 영원히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돈을 쓸 곳과 쓸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맞아 떨어질 때 돈이 나를, 당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이 한 장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아들들에게 돈의 귀중함을 깨우쳐주려고 등록금을 500원짜리로 준적도 있을 만큼 돈에 대해 치밀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린고비는 아닙니다. 꼭 써야할 곳에는 아낌없이 씁니다.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불우한 이웃과 형제를 위해서는 계산하지 않고 돈을 씁니다.

돈을 쌓아두고 아까워서 매일 트레이닝복만 입고 삽니까? 그러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면 돈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사치는 안 되지만 적당히 자신을 가꾸어야 돈이 당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파도 돈 아까워서 병원에 못 가신다고요? 그러다 죽으면 그 재산이 누구 것이 된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아까워서 하나님께 못 드리겠다고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마6:19).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은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쓸 때는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제 때에, 제 곳에 쓰일 때 가치를 발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고, 그래야 돈이 당신을 보호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국력이 강한 나라의 백성이 세계에서 대접을 받듯, 돈은 나라를, 단체를, 개인을 보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돈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남용되고, 악용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반면, 제 때에, 제 밭에 떨어지기만 한다면 분명히 일만 선(善)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써야 할 때는 쓰십시오. 이것이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돈을 택할 것이냐

생명을 택할 것이냐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

돈은 충실한 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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