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正道)로 가야 큰 복을 받는다 ( 사 30:1~26 )
조금 오래 전, 주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 인천교회에서 오전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 행사가 있어서 잠시 지체하는 바람에 조금 늦게 서울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 교회의 오후 예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차를 운전해주는 홍 집사가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과속을 하다가 그만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딱지를 떼는 일이 생겼습니다.
딱지를 떼인 후, 홍 집사가 혼잣말로 “휴일인데 좀 봐주지.” 하길래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과속을 한 우리가 잘못인 거지, 경찰 탓할 거 없어. 도로교통법대로 행하지 않은 우리가 잘못이야. 정도에서 벗어나면 규제를 받아 마땅해.”
정도(正道)란 바른 길을 말하는 것으로 규정된 법대로 가는 것이고,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명예롭지 못하게 교통사고 세계 1위 국가입니다. 왜 이런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정도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즉 규정된 교통법을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규정보다 과속을 하고, 아무데서나 U턴을 하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음주운전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과속해도 경찰에 안 걸리고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좌회전, 우회전해서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 어느 날 큰일 치르고 맙니다. 이것은 경찰에 걸려 딱지 떼고 벌금 무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도 치게 되는 날이면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치명타를 안기게 됩니다.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민간 항공기가 기계 고장으로 항로를 이탈해 구소련의 영공을 침범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구소련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적으로 간주해서 미사일을 날려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죄 없는 민간인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정도를 벗어나면, 정로를 이탈하면 이런 변을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행기나 배는 항로(航路)로 가야 합니다. 자동차는 도로로 가야하고 사람은 인도로 가야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것이 정도요, 어느 길이 정로일까요? 그것은 말하나마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가라하시는 길로 가는 것이 정도요, 정로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의 은총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다는 겁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힘들고 조금 더디지만 정도를 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일신의 안일을 위해 정도를 버리고 편법을 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결국은 비참함이었습니다.
유다왕국의 제 10대 왕인 웃시야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형통하게 하셨고, 그의 나라를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웃시야가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한 것입니다(대하26:16). 제단에 향을 피울 수 있는 자격은 아론의 자손에게만 있었는데 말입니다.
교만이 그를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발하여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홀로 기거하게 되었고 왕권을 아들에게 물려줘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요담, 그는 아버지인 웃시야가 문둥병에 걸려 섭정으로 왕정을 집무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잘 나가다가 정도를 이탈하는 바람에 비극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는 정도대로, 정로로 나아갔습니다.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6).
또한 여호수아의 여리고 공략에 참가한 아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여리고 성에서 취득한 모든 물건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여리고 함락 후에 봉헌물 중의 일부를 취했습니다. 그가 훔친 것은 별 거 아니었습니다.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금덩이 하나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선을 조금 넘은 것도 넘은 것입니다. 기차가 철로를 조금 이탈했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니듯, 달리기할 때 출발선을 조그만 넘어도 실격이듯, 아간은 분명히 정도를 이탈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이성에서 패했고, 그와 그의 가족은 관례에 따라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죽인 바 되었습니다.
정도를 벗어나면, 정로를 이탈하면 자기만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꿎은 다른 사람까지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가끔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고 나면 당사자만 다치고 죽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마주오던 다른 사람도 다치고 죽을 수 있는 겁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갈 때 바다에 풍랑이 일었는데, 그 배에 요나만 탔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니 요나로 인하여 애꿎은 사람들까지 풍랑으로 고생한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정도로 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 삽니다.” 예, 그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도로 가면 정로로 가면 큰 복을 받게 되고 그 복이 영원하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무데서나 U턴해서 빨리 갈 수 있다니까요.
매일 걸리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나 언젠가는 걸리는 날이 있고, 그러다 큰일을 치르게 된다는 겁니다. 상법을 어기고 편법으로 장사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금 안내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국에서 못 먹는 갈비탕을 깡통에 넣어서 팔아 부자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영원합디까? 걸리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고, 더욱이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도 잘들 삽니다. 아니 어쩌면 더 잘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하냐는 겁니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24:19,20). 당장은 그들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만 절대 아닙니다. 정도가 옳은 길이요, 정로로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길이며 안전한 길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사랑이 영원무궁한 것입니다.
왜 정도를 벗어나는 줄 압니까? 첫째는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아담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고, 루시엘이 하나님과 비겨보려고 하다가 쫓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죄를 낳고, 사망에 이른다는 겁니다.
둘째는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빨리 뭔가를 이뤄보려는 욕심 때문에 대충하고, 요령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급이 죄가 되는 이유입니다. 가장 편하게 사는 방법은 정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정로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조금 늦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안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자가 영원한 행복을 약속 받습니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도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사57:2).
편법 없이 정직하고 법대로 하는 사업에 장래가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1:1). 가정에서도 이탈하지 않고 정도로 가정을 이끌면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잠5:15).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우리가 정도를 걸음으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정도가 무엇인지, 정로로 갈 때 어떤 축복이 있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오늘부터 우리 정도로 갑시다. 할렐루야!
법 위에 잠자지 말라 불법은 죄다
정도로 가는것이 첩경이요 안전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