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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뱀의 지혜를 주목하라 ( 마 10:16~39 )

385호 · 2007-07-13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의 12제자를 파송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주님이 제자들을 자신의 대권자로 파송하시면서 하신 이 말씀은 장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더러 말씀에 반항할 것이고 핍박과 모함, 더는 이리처럼 생명까지 노략질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살아날 방법은 있으니, 곧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제자들에게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사회,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엄연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자녀 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가 제 아들들에게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당신이 당신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잘 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이런 말 잘 하시지요. “너는 꼭 우물가에 내어놓은 아이 같아 걱정된다.”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내어놓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십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뿔도 없는 양, 그렇다고 잘 달리지도 못하는 양 같은 우리가 걱정되어 이렇게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세상이 이리떼 속 같다고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처신하여 세상을 이겨라.”

그럼 가장 간교한 존재(창3:1)라는 뱀의 특성에 대해 알아볼까요?

첫째, 뱀은 후일을 예비하는 존재입니다. 뱀은 겨울 동면을 위하여 미리 고단백질 음식을 많이 먹어둠으로 겨울을 준비합니다. 이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노후와 사후를 위해 대비하고 계획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계획하지 않은 자는 망하기로 계획한 자다.” 이것 아닙니까? 계획하지 않는 무질서의 삶으로는 절대 세상에서 승리할 수도,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도 계획하지 않는 삶이 수치를 당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는다.”(눅14:28,29).

둘째, 뱀은 1년에 한 번 허물을 벗습니다. 이것은 변화요, 개혁을 말합니다. 쌍둥이도 시대차를 느끼는 세상인데, 늘 구태의연한 자세와 생각으로 산다면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에 퇴보의 의미는 현재에 안주하여 제자리걸음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고로 기업이나 단체, 삶에서의 개혁은 필수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도 혁신적인 방안이 간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변질될 수 없지만 복음을 전달하는 매체와 방법은 시대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일환의 하나가 바로 인터넷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혹자는 인터넷 예배가 무슨 예배냐고 하지만, 그것은 구시대적인 생각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셋째, 뱀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위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 가든지, 어느 문화권에 가든지 적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가 된 것이 왜 입니까? 이는 결국 영혼을 구원코자 함이지 않았습니까?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원래 빵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해외집회를 다니다보니 밥만 고집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음식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밥에 김치만 고집하고 있다가는 복음 전파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웠기에 적응했더니, 이제는 오히려 밥보다 빵이 식성에 맞습니다.

넷째, 뱀은 뱀을 먹지 않습니다. 즉 동료를 배신하지도, 모함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배신자의 최후를 사울과 가룟 유다를 통해, 또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압니다. 상대를 먹으면 언젠가는 자신도 먹힐 날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다섯째, 뱀은 뼈가 있으나 뼈가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제가 집회를 위해 몬트리올에 머물고 있을 때 주님이 제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는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지혜를 말합니다. 요셉이 자기의 꿈을 밝혀 당한 고난, 히스기야가 국가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어 당한 고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25:2). 오래 전에 서울교회 부지를 매입하려고 할 때, 기쁜 마음에 우리 교인들에게 발설을 했더니 여러 사람이 협상라인을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나 꿈, 정보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일을 이루기까지 숨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섯째, 뱀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불협화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원만한 인간관계, 무난한 대인관계가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아는 것도 없이 깡통소리 내는 자들에게 침묵이 무기임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시쳇말로 가만히 있으면 50점은 줄 텐데, 아무데나 나서고,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대는 자들은 큰 실수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일곱째, 뱀은 승산 없는 게임은 하지 않습니다. 무모한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왜 실패하는 줄 압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약1:15). 성경에 ‘일만을 가지고 이만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가서 화친을 청하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눅14:31,32). ‘믿음이야.’ 하고는 무대포로 나가다가는 개망신을 당할 수 있고,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여덟째, 뱀은 색깔이 아름다우며, 부드럽습니다. 즉 자신의 관리에 뛰어나다는 겁니다. 언행심사가 아름답고, 외모가 깨끗하고 단정하다면 일단 후한 점수를 받고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들은 외모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지저분하거나 추한 모습을 선호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도 잔칫집에는 예복을 입으라고 하셨고(마22), 금식할 때도 머리에 기름을 바를 정도로 단정하라고 하셨습니다(마6:17). 꽃에는 나비가 날지만, 더러운 것에는 파리나 모기가 낀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제 ‘뱀처럼 지혜로워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어떤 사람은 낑낑 대며 힘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자는 지렛대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옮기는 자가 있습니다. 이 지렛대가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란 생활로 직결되는 지식이며, 현명한 처세술인 것입니다. 지혜가 좋은 것인 줄 알지만 부족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지혜가 제일입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할렐루야!

지혜는

생활로 직결되는 지식이다

금은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사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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