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염려하지 마라
여보게,
세상을 다 뒤져봐도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걸세. 어느 시대, 어느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든 다 걱정과 염려를 안고 있었고, 안고 있을 걸세. 그런데 그 걱정이란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던가? 걱정을 많이 하면 문제가 쪼그라들어 작아지던가 말일세. 더는 염려하면 문제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던가? 절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는 알 걸세. 그러면서도 우리는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하지.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네. “풀을 베는 농부는 들판 끝을 보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말로 들리나? 이는 농부가 들판 끝을 보게 되면 “이 너른 들판의 풀을 언제 다 베나?” 하는 심정이 되어 근심 속에, 염려 속에 파묻히게 된다는 말일세. 잠언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더군.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앞서 걱정할 것이 없다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라네. 들어보겠나?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농부가 그날 할 수 있는 일에 충성하면 언젠가 너른 들에 풀을 다 벨 수 있지 않겠나.
여보게,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시계가 병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네. 의사가 왜 병이 낫느냐고 하니까 시계 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1초에 내가 ‘똑 딱’을 60번 해야 하고, 1시간이면 3,600번, 그리고 하루면 86,400번, 일주일이면…. 계산도 안 되네. 그러니 일 년이면 몇 번을 ‘똑 딱’해야 하는지 맙소사!” 시계는 곧 숨이 넘어갈 듯 했다. 그러자 의사는 시계에게 “그러니까 1초에 ‘똑 딱’을 몇 번 한다는 거요?” 하고 물었다.
시계가 “1번이요.” 하자 의사는 “그럼 이렇게 하세요. 1분 것이나 1시간 것을 생각지 말고, 그냥 1초에 ‘똑 딱’을 즐겁게 하세요. 그러면 병이 싹 나을 겁니다.”
자네도 혹 이 시계처럼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아들이 제대로 취직은 할까?”, “결혼하면 잘 살까?”, “노년은 어찌 될까?” 이런 걱정으로 주름살을 늘릴 필요가 없네. 다 잘 될 걸세.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까.
우리가 지금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하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앞날을 준비하고 챙기시지 않겠는가. 그러니 걱정 말자고. 걱정한들 뭐가 달라지겠나. 머리에 흰머리만 늘고, 그나마 없는 머리만 빠지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기쁘고 행복하게 성실히 살자고. 기뻐하기만 하기에도 하루는 너무 짧다네.
다 잘 될 걸세. 자네 생각 이상으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