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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분노는 행복을 좀 먹는다 ( 창 4:1~12 )

383호 · 2007-06-27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다고 합니다. 더울 때는 시원한 음료를 많이 찾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콜라음료가 제일 인기입니다. 건강은 둘째 치고 콜라 한 모금이 들어가면 그 톡 쏘는 시원한 맛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콜라를 잘못 열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는 것은 아시지요? 아마 모두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콜라가 흔들어진 상태에서 열면 거품이 뿜어져 나와 옷도 버리고, 주위도 난장판이 되는 것 말입니다.

저는 콜라 같은 사람을 자주 봅니다.

감정을 조그만 건드려도,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와도 불끈 하는 사람 말입니다. 거품이 가득한 콜라를 열면 갑자기 넘쳐흘러 옷도 버리고 다 쏟아져 먹지도 못하게 되지 않습니까. 혈기 내는 자나 분을 품은 자도 이와 같아서 그로 인하여 본인은 물론 주위사람들까지 다 상처를 입게 되고, 또 다 이뤄놓은 결과물을 엎어버리는 꼴이 되고 말지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7:9).

가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도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5~8).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기뻐 열납하시지 않자 그만 분이 가득 찼습니다. 그 때 그가 자신의 믿음을 돌이켜 살폈더라면 좋았을 것을, 되레 제물이 흠향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벨에게 시기가 가득하여 분풀이로 그를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노하면 이성이 마비되니 앞뒤를 따지지 못하고 큰일을 내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 어느 집사도 욱하는 마음에 몽둥이로 아내를 내리쳐서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화가 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직도 옥에 갇혀있는 신세입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서야 누가 서리요”(잠27:4).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물론 반석에서 물은 솟았지만 모세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리도 갈망하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민20:24). 분을 내는 것은 이처럼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입니다.

거품이 가득한 콜라를 열면 다 쏟아져서 갈증이 날 때 마실 것이 없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일본의 한 의과대학에서 실험을 했는데, 개를 네 시간 동안 묶어놓고 화를 내게 한 다음에 그 뇌수의 액을 취하여 검사해보니 독소가 다량으로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그 양은 개 80마리를 죽일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합니다. 분을 내는 것은 곧 독소를 뿜어내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를 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주신 것은 자제력입니다.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주님을 볼까요?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분이 능이 없어 할 수 없이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해야 할 일, 분명한 목적을 바라보았기에 인내의 쓴잔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힘으로 참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있게 하셨고, 감당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감당케 하셨습니다. 콜라 같은 심성을 생수 같은 심성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인하여 변화된 가장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를 뵙기 전에는 혈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행9:1). 그런 그에게 성령이 임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충분히 분노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핍박과 환난, 모함 중에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으며, 더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한 그의 편지가 그의 변화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당부가 있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 이 말씀은 주님을 잡으려고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와 함께 다가와 입을 맞추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들어 말고라 하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떨어뜨리자 주님이 그의 귀를 다시 만져 낫게 하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도, 한 때 주님을 모셨던 제자의 배반에도 주님은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십니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곧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은 콜라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흔들어도 변함이 없는 생수 같은 사람입니까? 저도 예전에는 콜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제 자존심을 건들면, 제 인격을 짓밟으면 부글부글 끓어올라 맞받아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저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제가 좀 모함을 받았고,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그들을 향하여 분을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놀랄 지경입니다.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하는 제 성격이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목계(木鷄)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자랑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까지 참으라”고 늘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누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버럭 분을 내는 자와 가깝게 지내려고 하겠습니까?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그런 자는 피하는 게 장땡입니다. 그런 자와 있게 되면 하는 게 싸움일 테니까요.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당신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지 않습니까? 이는 당신이 콜라 같은 사람이라 그런 겁니다. 당신이 부글부글 한 번 끓어오르면 옷도 버리고 주변도 지저분해져 버리는데 누가 옆에 가겠습니까? 당신이 온유하면 됩니다. 온유한 남편과 아내, 온유한 목사, 온유한 구역장이면 오지 말라고 등을 밀어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당신 곁으로 몰려들 겁니다.

또 화가 나려고 합니까? 또 끓어오릅니까? “이것까지 참으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숨 한 번 크게 쉬세요. 그리고 늘 기도하세요. 그러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의 표는 오래 참음이며(고후12:12), 성령의 열매도 오래 참음이니까요(갈5:22).

일전에 심장이 아파 미국에 갔을 때 의사가 저더러 “바보처럼 사십시오.” 했습니다. 화날 일이 있어도 바보처럼 참으세요. 바보면 어떻습니까? 내가 살고, 내 가족, 내 교회와 나라가 산다면요.

올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이루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혈기 내지 마십시오. 이제 기도한 지 6개월이 지났으니 열매가 맺혔을 텐데 화를 내면 그 열매에 우박이 떨어지게 됩니다. 얼마나 아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바보처럼 참고, 예수님처럼 참읍시다. 할렐루야!

콜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생수 같은 사람이 되라

분노는

파괴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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