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자와 일할 자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분은 한다. 마치 주님이 변화산상에서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가신 것처럼 나도 일을 할 때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 내성이 강한 자, 열의가 남다른 자와 손을 잡는다.
처음 내가 해외집회를 다닐 때만 해도 일행은 거의 10명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딱 둘이다. 그 외의 집회 인원은 현지에서 조달한다. 10여년 해외집회를 다니다보니 함께 일할 자는 따로 있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가끔 해외집회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닐진대, 영적 전쟁을 치르는 치열한 곳에 가는 것인데 내가 돌봐야 할 자를 데리고 간다면 나는 이미 그 전쟁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같이 총을 들고 싸워줄 동지가 필요하지 내가 챙겨줘야 하고, 내가 보살필 자가 곁에 있다면 어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도울 자와 함께 일할 자는 따로 있다. 물론 우리는 늘 약자, 즉 도울 자의 편에 서야 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써야 하지만 일은 강한 자, 능력자와 해야 한다. 인정에 치우치고, 동정에 사로 잡혀 능력이 되지 않는 약자와 일을 한다면 이는 공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 자, 의욕과 열정으로 뭉친 자와 일을 해서 이익을 많이 남겨 더 많은 약자를 돕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주님이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냉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경영철학이다. 능력이 있는 자에게 맡겨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게 하신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나누도록 하신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자와 일하고 있는가. 설마 도울자와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