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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 요일3:1~12 )

378호 · 2007-05-20

한 목사님이 심방을 가느라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택시비가 3천원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5천원 권을 기사에게 주었는데, 기사가 거스름돈으로 7천원을 목사님께 건네주는 겁니다. 목사님은 기사가 만 원권으로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7천원을 받아든 목사님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요즘 내 주머니가 헐렁한 것을 주님이 아신 건가?”, “이런 걸 행운이라고 하는 건가?” 택시에서 한 발을 내린 목사님은 이것을 모른 척하고 받을 것인지, 아니면 돌려줘야 할 것인지 생각하다 “그래도 내가 목산데….” 하고는 기사에게 5천원을 돌려주며 “기사님, 난 5천원 권을 냈습니다. 5천원을 더 주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압니다. 5천원 권 내신 거. 일부러 그랬습니다.” 그러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은 숨이 확 막혀 말도 제대로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7천원을 준 겁니까?” 했더니 기사가 말하길 “사실 지난주에 목사님 교회에 처음 출석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까 목사님이 택시 문을 열고 타시는 순간 그 목사님이란 것을 알았죠. 그래서 목사님은 정직하신가 하고 한 번 시험 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계속 목사님의 교회에 나갈 겁니다.”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교회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고 택시에서 내린 목사님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답게’ 산다는 것은 그의 신분에 걸맞는 행동과 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저 사람은 양반집 자손다워. 언행심사가 아주 점잖단 말이야.” 이렇게 말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무엇입니까? “저 사람 예수 믿는 거 맞아? 교회 다니면서 왜 저래?” 이런 것이지 않습니까. 왜 이런 소리를 듣느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유독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는가 하면 우리는 빛 가운데 있고, 그들은 어두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고 어두움에 거하는 사람들끼리는 죄를 지어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두워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바로 보이게 됩니다. 어두운 데 있는 사람은 밝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거든요. 우리는 처음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에 매인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면, 죄를 물마시듯 범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왕이 길을 지나다가 거지로 사는 아이가 하도 가여워서 그를 데리고 와서 왕의 호적에 입적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거지 아이가 옛날 습성대로 누가 보지 않으면 쓰레기통이나 뒤져먹고, 남의 물건이나 슬쩍 한다면 그 왕이 어찌 아들로 삼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마귀의 자녀들이나 할 법한 행동과 말을 계속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찌 살아야 합니까? 먼저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의 말씀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이는 자신에 대한 엄격한 처신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유혹이나 미혹에 대하여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합니다. 보는 것이 다 죄요, 듣는 것이 다 악한 것입니다. 그것이 때론 너무 달콤하고 매혹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물리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는 겁니다. 술이나 담배에 손을 대서도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며, 남을 해쳐서도 안 되고, 음란한 것을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사행성 오락도 안 되고, 사기를 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럼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것은 세상을 떠나 살라는 말이지요.

세상과 담을 쌓고 교회 안에서나 살아야죠.”라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떠나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둔 세상에서 빛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15).

살다보면 어떤 일을 하자니 좀 찜찜하고, 안 하자니 너무 손해인 것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일을 사실대로 말하자니 손실이 있고, 숨기자니 양심에 가책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극히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이럴 때 손해를 보더라도, 손실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옳은 쪽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자식 맞네.” 하고 대견해하셔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둘째, 하나님의 자녀는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눅6:29)는 심정과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차원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즉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라는 말씀이지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너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는 겁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니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눈에 눈, 이에는 이’ 이래야 직성이 풀릴 텐데 하나님의 자녀는 악에 대항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한 단계 위인 선으로 갚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양자 삼았던 손양원 목사처럼 살라는 것이지요. 몇 번씩 우물을 빼앗는 자들에게 우물을 넘겨준 이삭처럼 살라는 것이고, 강도를 만난 원수를 여관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준 사마리아인처럼 살라는 것이며,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단 자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신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대로 너희도 살아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6:36).

사실 제가 세상에 있을 때 한 성격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알고 나서, 더욱이 하나님의 종이 되고 나서는 그 성격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봐도 예전의 저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같아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닮아야 옳습니다. 닮아야 당연합니다.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있고, 세상으로 발길이 달려가고 있습니까.

“안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도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고 있습니까. 그럴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세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 하나님이 쉽게 우리를 당신 자녀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고, 자녀 삼으신 겁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사랑을 되새긴다면 어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을 행하겠습니까. 어떡하면 그 사랑에 보답할까 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할렐루야.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세밀하고 섬세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감찰하고 계심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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