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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욘3:1~4:11 )

375호 · 2007-05-03

1994년 9월 21일,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하던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것은 일가족 5명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육 먹은 것을 자랑하면서, 자신들은 영원한 악마로 기록되기를 원한다는 자칭 지존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인간임을 포기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흡사 짐승이었고, 마귀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자들은 하루 빨리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한다.’ 고 하여 이례적으로 법 집행이 빠르게 이루어져 그들에게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은 이 같은 조치가 당연하다고 여겼고, 더러는 사형으로도 죄 값이 부족하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요, 모든 국민이 극악무도한 자들에게 분노하고 있을 때, 한 집사님이 이들에게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영치금을 넣어주었습니다. 정말 누구도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영치금을 받은 지존파조차도 충격을 받아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들은 영치금으로 인하여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고, 변화를 눈치 챈 그 집사님은 편지를 통하여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들을 직접 만나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구원 그리고 성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죽은 양심을 살려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는가를 깨달았고, 회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1월 2일, 사형집행이 있는 날 아침에 그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통성기도를 한 뒤,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하고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잠깐 동안에 43개소 교도소와 12개 소년원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요.

“그런 놈들은 지옥에 가야 마땅한데, 그것도 지옥 아랫목 제일 뜨거운데 가서 고생을 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의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악마라고 시인하던 사람마저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고, 하나님이 부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요나가 딱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앗수르 사람들이 구원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사람, 더욱이 니느웨 사람들의 사악함은 천지가 다 알고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가둬서 니느웨로 보내셨고, 요나로 하여금 외치게 했습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들의 모습을 보신 이 음성을 들은 니느웨 백성들이 조복을 입고 금식을 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성을 냈더니 하나님이 박 넝쿨을 요나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0,11).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만민에게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안 돼.” 하지 말고, “지금은 아니야.”라고 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제가 맨 처음 해외집회를 어디로 나간 줄 아십니까. 일본입니다.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압제한 나라, 아직까지도 곱지만은 않은 나라 일본 땅으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요나의 심정이었습니다. 안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물고기 뱃속에 넣어서라도 하나님은 뜻을 관철하실 분이기에 순종하고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성경을 다시 조명해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말씀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내 가족이라면, 유대는 내 이웃이고, 사마리아는 원수가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은 가라하시는 어느 곳이든 달려갑니다. 한 영혼을 건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갑니다.

전도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 가족과 내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 전도하려고 하면 우리가 한 시인들 잠잠해서 되겠습니까. 때마다 시마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씨 뿌리는 것에 비교해 봅시다.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는 것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다보면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져 새가 쪼아 먹을 수도 있겠지요. 어떤 것은 가시떨기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계중에는 좋은 땅에 뿌려져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땅이야 옥토인지 돌밭인지 바로 알 수 있지만 마음의 밭이야 육안으로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많이 뿌리세요. 그냥 전도하세요.

당신이 옥토인지 돌밭인지 판단하지 말고, 당신이 시기를 따지지 말고 전도하세요. 그러면 물 주시는 이가 물 주실 것이고, 자라게 하시는 이가 자라게 할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 있을 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저 사람은 절대 예수 안 믿을 사람이야.” 라고 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너무 알고,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제 친구가 툭 던진 한 마디, “이 세상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죽은 다음의 세상에는 어쩜 그렇게 무심하냐?”는 그 말 한 마디에 충격을 받아 예수를 만나고 이렇게 하나님의 종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친구가 “저 친구는 안 돼, 아직 때가 아니야.”라고 했더라면 저는 오늘날 없었을 것입니다.

전도하세요. 망나니 같은 당신의 남편도, 죄를 밥 먹듯 하고 있는 당신 친구도,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는 당신 부모도 창세 이전에 택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강도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그들도 동일하게 구원하시려고 하십니다. 바로 당신을 통해서요. 그러니 묵묵히 있지 말고 입을 열어 전하세요.

가끔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나면 성도들 중에는 며칠 동안 벼락치기 전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치 소낙비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실 소낙비는 땅에 스며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 넘쳐서 하수구로 들어가고 말지요. 소나기 밥 먹는 사람이 소화가 안 되듯, 소나기 전도는 그리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멋진 삶을 사는 자는 누구냐 하면 전도인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이슬비가 눈에 확 띠지 않으나 속까지 스며들듯 늘, 꾸준히 전도하는 자, 전도가 생활화된 자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성도가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양이 양을 낳지 목자가 양을 어떻게 낳습니까? 목자는 양이 낳은 새끼를 기르고 먹이고 보살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 양이 새끼를 낳다가 고생을 할 때 가서 낳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근본 목적은 우리를 예수의 증인 삼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나가 전하십시오. 우리교회에서 매주 발간되는 신문과 설교테이프,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여 전도하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착하고 충성된 자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전도는 영혼의 운동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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