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시는 것도 사랑입니다
목자는 내 비위를 맞추는 자가 아니라 주의 법을 선포하는 분이다
서울교회 영어 통역을 맡고 있는 박소영 입니다. 일천한 믿음생활에 간증을 한다는 게 민망하지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구나.’ 하고 써봅니다.
불교를 믿다가 1년 3개월 전 어머니의 설득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두 달쯤 되니 봉사가 하고 싶어 행정실에 문의를 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3부 영어 통역을 준비하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길고 긴 첫 설교통역이 끝나고 나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자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통역실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주 후, 하나님께서는 영어 통역을 전담시키셨습니다.
‘하나님 참 특이하시다’며 자주 중얼거립니다.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인재들을 두고 영어를 전공하지도, 많이 공부하지도 않은 나를 선택하셨을까?’ 저의 무지와 무경험을 책망치 않으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컸습니다.
과분한 사랑에 매도 맞아갑니다. 3월 1일, 우리가족은 목사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면담 중에 목사님께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하셨을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귀신을 만나 보셔야 이해하실 거야.’
그 다음날 철야예배를 앞두고 오후 5시쯤 통역 준비하러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뭔가 속에서 엉키는 것만 같아서 숙소로 올라갔습니다. 먹었던 것들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회개의 영이 저를 무릎 꿇게 했습니다. 같이 계시던 분들께 평소 잘못했던 점들을 용서해 달라고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분들을 겉으로 웃고 인사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 입에서 “내가 죽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하느냐?”라는 말이 튀어 나오면서부터그분들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체육관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배를 움켜잡고 통역을 하는데,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몸이 아파서 통역을 더 못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남기고 엎드리는데, 이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내 종은 이런 순간에도 일한다.’ 놀랍게도 기도하시던 어머니도 똑 같은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신 거구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제 서원을 두고 하나님께서 저를 시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고통이 좀 가라앉는 듯 하면, “저도 할 겁니다!” 했고, 심해지면, “엄마…”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던 중, 예배가 끝난 듯 했습니다. 관절이 다 부서지는 것 같았고 내장은 다 찢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총회장 목사님께서 앞에 계셨습니다.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말해줄까? 네가 섰다고 자랑해서 그런 거야!” 목사님의 일갈에 제 속에서는 ‘아니다!’라고 외칩니다. 성령이 아니면 고집 세고 그릇된 본성이 그대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쫓으셨을 때, 제 안에서 서럽게 울었던 누군가가 아닌 저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는데, 힘이 없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창 밖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너 예수 없으면 못사는 사람 되었다!” 하셨습니다.
집에 와서 기도 했습니다. “주님, 제가 뭘 자랑했는지 말해주세요. 제가 왜 또 귀신 들려야 하는 건가요?” 그러자 주님께서 정확하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원했지 않았느냐?” 순간 목사님과 면담하면서 품었던 불경스러운 속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엎드려 웃던 사라가 이렇게 놀랐을까요? 경외의 대상인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통해 귀신은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지만 가벼이 생각할 대상도 아니며, 목자는 내 비위를 맞추는 자가 아니라 주의 법을 선포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또한 주의 종은 개인으로서 경험의 한계 내에 있기는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성령의 운동체임에 고개 숙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지적을 통해 큰 깨달음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제 좀 이해할 것만 갔습니다.
섰다고 자랑했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주의 종을 경홀히 여겼던 저의 큰 죄를 작게 지적한 사랑의 훈육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살이 찢기고 뼈가 어그러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단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목사님 앞에 나는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서야 하는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수 없는 귀신들과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달리시는 목사님처럼 나도 달릴 수 있는가?’ 자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의 절대 선이라는 잣대가 저를 향해 가차 없이 날라 왔다면, 저는 지금 숨을 쉴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낮추시고, 쉴 새 없이 깨달음의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실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 주셨고 기도해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라 하신 말씀이 두렵게 다가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