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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두려움은 마귀의 전술이다 ( 사43:1~13 )

366호 · 2007-02-28

2003년 키르기스스탄 집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당국자의 고발로 인해 저는 KGB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KGB 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울던 아이도 ‘KGB’하면 울음을 멈추었을 정도로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까? 슬라바 목사와 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한참을 대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KGB 요원을 만났을 때 저는 담대하게 “할렐루야” 하고 악수를 청했고, 슬라바 목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이 목사님은 세계 70개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이 목사님께 손대면 세계가 당신 국가를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슬라바 목사의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믿는 곳이 있으면 이처럼 담대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주하고는 한 판 싸우자고 했습니다. 더구나 블레셋 사람 중에도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나와 겨룰 사람 나오라”고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겁에 질려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삼상17:24). 바로 그 때 어린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달려 나가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맞춰 쓰러뜨린 후 그의 목을 벱니다. 어린 다윗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서 그렇게 담대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여호와의 이름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었기에 그는 거인 따위가 무섭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산천을 떠났지만 그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그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었고,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사자 굴에 먼저 가 계시는 하나님, 불 속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단3:25). 또한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그리고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제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눈 같은 사람이 떠나도, 오른 팔 같은 사람이 떠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떠나지 않으면 저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는 누구 떠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여건이 어렵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교단으로부터 축출되었을 때도, 언론이 자기들 마음대로 평가했을 때도,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했을 때도 저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지금 많은 염려와 근심,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자 주님의 제자들이 무서워 난리를 치며 주무시던 주님을 깨웠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있는 주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면 주님의 제자들과 같은 꼴입니다.

당신 곁에 주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고 계신데 풍랑 따위에 떨고 있는 것이니 당신은 믿음이 적은 자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게 되고 하나님이 곁에 계심조차도 잊게 됩니다. 그것이 악한 것들의 전술입니다. 어릴 때, 밤에 불을 끄고 촛불만 켜놓고는 손가락으로 벽에 그림자를 만들어 보았을 겁니다. 토끼모양도 만들고 호랑이도 만들었는데, 벽에 나타나는 그림자는 실제 손가락 크기보다 훨씬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그것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얼른 불을 켜면 됩니다. 그러면 그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악한 것들은 두려움을 주는 어둠 속에 우리를 가둡니다. 그래놓고는 별 것 아닌 것도 더욱 확대해서 겁을 줍니다. 그럴 때 겁에 질려 두려워 떨고 있으면 악한 것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얼른 불을 켜야 합니다. 빛 되신 주님을 부르면 빛이 들어와 벽의 그림자가 사라지듯 악한 것들의 궤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전기불이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야지 까짓 촛불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당신은 무엇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사업에 실패했습니까? 망했습니까? 욥을 기억하십시오. 악한 마귀가 아무리 장난을 쳐도 하나님이 욥을 떠나지 않았기에 욥은 다시 갑절의 부를 누릴 수 있지 않았습니까? 결혼에 실패했습니까? 룻이라는 여인을 생각하십시오. 그녀는 남편을 잃었지만 하나님이 이방 여인인 룻을 기억하사 그에게 보아스라는 더 좋은 남편을 주셨습니다. 사면초가라 두렵습니까?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 편에 서서 일하시니 인간의 계략을 오히려 대역전으로 이겨내고 건짐을 받지 않았습니까? 지은 죄로 인하여 두렵습니까?

마틴 루터가 기도를 하는데 마귀가 루터에게 말했습니다. “넌 죄목이 90가지가 넘어. 넌 죄인이야.” 그러자 루터가 마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난 죄목이 100가지도 넘지. 그러나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사했어. 어서 꺼져.” 죄인 중의 괴수인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 그리고 아들을 죽이기까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개인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온통 두려움의 논리와 두려움의 힘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이나 외교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이나 군사적인 모든 것이 다 두려움이 전제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이고,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이 내게 정말 실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그러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몰아내십시오. 주님이 부활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기 위함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8~20). 아직도 두렵습니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요. 이제 모든 일에 두려워말고 담대하세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할렐루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담대함은 성공의 부모이나 두려움은 실패의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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