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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 ( 요3:14~16 )

357호 · 2006-12-27

어른들이 “자식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옳은 말씀임을 제가 자식을 낳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안 아프고 크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만은 자식이 아프면 정말이지 제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심정이고, 자식이 속을 썩이면 입에 들어간 밥도 껄끄러울 정도로 만사가 다 괴롭습니다. 자식이 뭣 때문인지 눈물이라도 떨구면 부모는 애간장이 녹는 겁니다.

“아휴,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신경 꺼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고 다져 봐도 그것이 어디 말대로 돼야죠. 부모, 자식지간이 어디 칼로 무 자르듯 되어야 말이죠. 하긴 여든이 넘으신 우리 어머님도 예순을 바라보는 저를 염려하고 있으니 더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자식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겁니까? 왜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낳은 내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냥 세상을 두루 살피고 와라” 하시며 보내신 것이 아니라 “거기 가서 죽어라” 하시며 영화로운 관을 벗기시고 육신을 입혀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신 것이고(요일3:8), 다른 하나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행4:12).

왜 하나님은 당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죽이기까지 하시며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셨으며,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죄에 빠져있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려고 하셨을까요? 왜 그러셨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식이 속을 썩이고, 말 안 듣고 그래도 제가 온통 그 녀석들 생각뿐이고 연을 끊어내지 못하듯, 하나님도 비록 우리가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에덴에서 인간들을 쫓아내신 후 담담하셨을까요? “고생 좀 해봐라” 하시며 고소해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저의 어머니가 제가 예수 믿고 재산을 다 팔아가며 전도하고 제사도 안 지내는 등 어머니 마음에 흡족하지 않자 저를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그 때 동생들은 골칫덩이를 쫓아내어 어머니가 홀가분해하실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약주를 조금 하신 후에 문 걸어놓고 통곡을 하시더랍니다.

집 나간 저 때문에요. 마음에 맞지 않아 집에서 내쫓기는 했지만 그것이 걸리고, 자식이 보고 싶어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셨다는 겁니다. 비록 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아내셨지만 우리가 죄 가운데 허덕이고, 다투고, 상처 입을 때 하나님은 괴로우셨습니다.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를 멸하심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값진 사랑인 것입니다. 어떻게 더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글맞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었습니다. 틈만 나면 우상을 만들고, 위선과 불신과 불평, 이방인과의 결혼 그리고 이혼, 거짓 예배며, 오만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하나님을 기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론 회초리를 들었으나 그들은 그 때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회초리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1:2).

자신들이 행한 잘못은 기억하지 못하고 회초리만 노여운 이스라엘 민족. 그들은 곧 우리 자신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하면서도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거 맞나요? 그런데 왜 때리세요?” 그럴 때 하나님은 가슴을 치실 것입니다. “내가 아들까지 줘서 너를 구원했는데…” 그러나 때리는 것도 사랑입니다.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아입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5:18). 때리는 부모 마음은 맞는 것보다 더 아픈 겁니다.

호세아에게 디블라임의 딸인 고멜이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다른 남자를 갈구하여 호세아를 버립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녀를 찾아 노예시장에서 구출하여 다시 집으로 데려옵니다.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진지한 사랑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염려입니다. 더는 세상과 짝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호세아는 고멜로 인하여 심한 가슴앓이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멜을 버리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낳았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창기 같은 우리를 놓지 않고 사랑의 줄로 매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으니라”(롬5:8).

저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할 말을 잃은 자입니다. 죄인인 저를 구원하신 것만 해도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데, 당신의 자녀를 삼아 권세를 주시고, 또 부족하지만 저를 당신의 종으로 삼아주셨으니 어떻게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양으로 세상의 것을 뒤로 하고 오직 주만 위하여 살기로 했습니다. 주님이 원치 않는 일이라면 세상이 뭐라 해도 하지 않으며, 주님의 뜻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그 뜻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에 십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바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사랑에 어떻게 보답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3,14). 그 사랑으로 인해 그는 주리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후욕을 당해도 참고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우리도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해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그 분이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주님이 싫어하는 것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입니다(갈5:19~21).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며,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에 보답하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불완전한 사람일수록 사랑이 더욱 필요하다

사랑은 실천이다 당신은 주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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