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구제운동’에 참여하게나
여보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네. 왜 하나님이 부족함이 없던 나를 유치원 지하에서 살게 하고, 슬레이트집에서 살게 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살게 하셨는지 말일세. 또 왜 사지가 마비되는 일을 겪게 하셨는지도.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의 형편과 심정이었네. 병과 가난이란 것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직접 체험하게 하신 게지.
나는 이번에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하려고 하네. 바로 ‘153 구제운동’ 인데,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더니 한 번에 153마리를 건져 올린 사건있잖나! 이 운동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지원하자는 것일세. 먹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그냥 배부르라고 할 수 있는가. 먹을 것을 주어야 하지 않겠나.
추워 떠는 자들에게 덥게 살라하면 더워지는가. 입을 것을 줘야 하지 않겠나. 사랑은 절대 구호가 아니라네. 사랑은 실천이라네. 끼니 거리가 없는 자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면 그것이 흡수되겠는가. 아닐세. 그들에게 복음은 어쩌면 라면 한 그릇일 수 있지. 추운 자에게 죽음 다음의 세계를 전한들 먹히겠는가. 외투하나가 날 걸세. 주님이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이유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하네.
여보게,
우리 이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 나눠주자 이걸세. 주님이 가난한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가.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오직 주님만이 아시게 해보지 않으련가. 잠언에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는 말씀이 아주 많이 있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일세. 그러니 하나님이 자네를 돌아보지 않으시겠는가. 꾼 것에 대한 이자는 안쳐주실까 이 말일세.
그러니 자네는 좋은 일 해서 좋고, 하나님께는 복 받는 일이니 얼마나 좋아.
우리 ‘153 구제운동’을 한 번 해 보세나. 우리가 조금 덜 쓰고, 우리가 조금 덜 누리면 넉넉히 나눠줄 수 있다고 나는 보네. 나눠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주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나는 이 길을 가려네. 나는 분명히 내 뜻과 함께 하는 동지가 많으리라고 보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자를 많이 붙여주시리라 믿네. 자네에게 복 받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 자네가 결정하게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코끼리는 상아를 남기지. 자네는 사랑을 실천한 흔적을 남긴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