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살전 5:18)
시카고에서 큰 화재가 났을 때 무디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에게 조롱하듯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고 설교하셨는데, 왜 하나님은 교회가 타는 것을 지켜보고만 계셨을까요?” 그러자 무디는 말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큰 교회를 짓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지으려면 지금 이 교회를 허물어야 하지 않습니까? 허무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 비용을 절감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디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이 가만히 계실 리 있었겠습니까? 그 후 무디는 놀라운 부흥을 일으켰고, 많은 헌금이 들어와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그 자리에 지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때 손양원 목사님은 9가지를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왔다는 것이고, 보배 같은 아들을 나에게 주심이며,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식을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고,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한 것이었습니다. 또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복인데, 전도하다 총살당해 갔음이며, 미국 유학 가려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음이고, 두 아들을 총살한 자를 자식 삼을 마음을 주신 것이며,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가 떨어져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임이고, 마지막으로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이상의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 주 예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불난 것이나 하나도 아닌 두 자식이 동시에 죽은 것이 어디 감사할 일입니까? 땅을 치며 하늘을 원망해도 시원찮은 판에 두 사람은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본문의 말씀을 실천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범사(凡事)’란 모든 상황과 환경을 말합니다. 기쁘고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고 악재가 겹쳐도 감사할 때 그것이 진정한 감사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교단에서 저를 제명시켰습니다. 귀신을 쫓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때 저는 교회로 돌아와 우리 성도들과 떡을 떼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 한 없이 기뻤고 감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그랬더니 하나님이 소문에 소문을 내사 제 이름이 만방에 퍼지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단 위에 풍성한 과일과 햇곡식이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과일과 곡식이 열매를 맺기까지 쾌청한 날만 계속 되었겠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비바람도 맞았고, 뜨거운 태양도 쬔 결과 오늘의 결실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오고 아픔이 있는 것은 다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고로 고난이 오면 더욱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하고, 아픔이 오면 아픔으로 인해 더욱 성숙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믿음의 증표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요셉은 형들에 의해 이국땅에서 종노릇하고 옥에 갇히는 고난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과 상면한 자리에서 요셉이 한 고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나를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8). 또 다니엘은 어땠습니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제 곧 사자굴에 떨어질 텐데 하나님께 감사하다니요? 보통사람 같으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결과가 이겁니까?” 하고 하나님께 대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찌 그런 다니엘을 사자밥이 되게 내버려두셨겠습니까? 하나님은 다니엘을 다리오왕과 고레스 왕 치세에 걸쳐 높이심은 물론 형통케 하셨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 앞에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더욱 그들을 높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감사하며 삽시다. 우리는 그들처럼 사자굴에 던져지지도 않았고, 풀무불에 던져지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그들에 비하면 조금 아프고, 조금 고되고, 조금 없는 것에 불과하니 우리는 더욱더 소리 높여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왜 나는 똘이 엄마처럼 능력 있는 남편을 못 만났을까?” 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봅시다. 어느 집에 매일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오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내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매일 바가지를 긁어대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의 증세는 더욱 심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기도를 하는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감사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속 썩이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고,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집 잘 찾아오니 감사하고, 교회 나간다고 시비 걸지 않으니 감사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니 고맙고…’ 그녀는 감사할 일들을 생각하니 숨만 쉬려면 나오던 한숨이 사라지고 대신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때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들어서기가 무섭게 고래고래 소리쳤을 아내가 오늘은 사분사분하기만 하니 남편이 놀라 “당신 왜 그래?” 합니다. 그 때 아내가 “오늘 당신을 보니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답했더니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토닥거리며 “이제 안 그럴게. 정말 술 안 마셔.” 라고 했답니다.
감사는 이렇듯 항암제요, 소독제요, 해독제인 것입니다. 뭔가 꽁 뭉친 마음을 풀기에 감사보다 좋은 약이 없고, 상처 난 마음을 아물게 하는 것이 감사며, 곪을 것 같은 상황에 감사보다 좋은 치료제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제가 식당에 가면 서빙 하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깍두기 하나라도 더 갖다 줍니다. 또한 우리가 예배처소로 쓰는 88체육관에서 종사하시는 분들께 만나면 늘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들이 우리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겁니다. “뭐 돈 내고 쓰는 건데…” 해보십시오. 난처한 일이 참 많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알면 뭐 합니까?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름 없는 자동차와 같고, 총알 없는 총과 같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니라’(약2:26). 학교에서 많이 배운 것을 써먹지 않으면 그것이 어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회에 나와 써야 참 지식이 되는 것이듯,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그 말씀이 운동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를 실천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나라와 사회에 감사하며, 내 가족에게 범사에 감사합시다. 또한 교회에서 서로에게 감사합시다. 그러면 웃음과 행복과 사랑이 넘쳐날 것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