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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347호 · 2006-10-18

출발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사실 이번 아르헨티나 집회는 어려운 결단 속에 진행된 것이었다. 집회를 준비하는 히메네스(Hector A. Gimenez) 목사가 많은 지탄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목회자로 명성을 날렸었는데 그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부적절한 간통문제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로인해 교계 목회자들은 물론 성도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고통 가운데 있었다. 죄를 회개하고 다시 재기하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다시 살고자하여 목사님께 집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올리엘 목사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도 이 집회를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생각이 다르셨다. 목사님의 목회철학 자체가 ‘평생에 남을 살리는 자가 되자’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지만, 하나님의 뜻도 정죄함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구원에 있음을 잘 알기에 모두가 돌을 던지더라도 죄를 회개하고 나오는 자를 돌아봄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이 집회를 수락하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이다(롬8:1,2).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으시거늘 어찌 감히 인간들이 더러운 손을 들어 돌을 던지려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상고하고 그 지식을 안다하며 오히려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기에 바쁘다. 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집회의 성격은 둘째치고라도 우선 목사님의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수십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지 개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면 누가 이 길을 가겠는가. 목사님은 지친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시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행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오르셨다. 정말 긴 여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5시간, 한국에서부터 비행시간만 30여 시간 이상 걸리는 지구 반대편의 가장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을 빠져나와 햇빛을 보는 순간 그 따스한 빛이 얼마나 새롭고 감사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목사님의 컨디션도 많이 회복되어 보였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튿날부터 쉐라톤 호텔 컨벤션 홀에서 목회자 및 실업인들을 위한 세미나가 3일 연속으로 진행되었다. 어이없는 상황 속에 집회는 취소되었고, 대신 주일저녁에 히메네스 목사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쟈네다 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마르델쁠라따의 올리엘 목사 가족도 참석하였다. 사실 그도 히메네스 목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이초석 목사님이 오시니 당연히 참석한다며 왔다고 한다. 어쨌든 반가운 해후였다.

목사님은 세미나를 통해 이 땅에 온 목적 두 가지를 분명히 밝히셨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히메네스 목사를 살리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천명하시고, 정죄가 아닌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 갇혀있던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롬8:1,2).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고 끌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돌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지 말라’고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요8:3~11)를 주신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러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로지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분입니다. 오래 참으시고 마지막까지 우리가 변화되기를 갈망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깨닫고 돌이켜 용서를 구하며 나올 때 하나님은 기쁨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돌아온 탕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금가락지와 새신을 신기며 환영해주신 아버지처럼 말입니다(눅15:11~24). 정죄하지 맙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히메네스 목사를 단으로 불러내어 이제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깨끗한 종이 되라고 권면하시며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다. 그러자 히메네스 목사는 갑자기 나무토막 쓰러지듯 뒤로 넘어지는 것이었다. 귀신이 떠나간 그를 다시 일으켜 사랑의 포옹으로 감싸주자 장내는 기쁨과 감격의 도가니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올리엘 목사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포옹해주었다. 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감동의 천국잔치였다.

목사님은 지친 심신 가운데서도 오로지 목적에만 충실하셨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겨버리는 상황 속에서도, 집회 장소까지 1시간 반 이상을 가야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히메네스 목사를 살리려는 두 가지 목적에만 올인하셨다. 진실은 진실된 자에게만 통하고 진주는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 가야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개, 돼지에게 진주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을 하라고 명령받은 적이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명령 받은 것은 오직 영혼을 사랑하고 진실과 정직을 가지고 진주 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뿐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에서 성령으로 함께 역사해주신 것 아닌가. 언제나 우리를 믿어주시고 사용해주시는 하나님만을 찬양한다.

이번 집회를 통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제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난 히메네스 목사가 깨끗하고 정직한 종으로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에 우뚝 서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그 날에 받을 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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