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8)
사도행전 3:1~10계속 되는 기사와 표적
1. 기사와 표적은 기독교의 상징 중의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수없는 기사와 표적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구약시대에 에녹의 들림 사건부터 시작하여 이삭의 탄생, 야곱의 얼룩덜룩한 양 사건, 홍해사건, 광야시대의 생수와 맛나, 구름기둥과 불기둥, 여호수아의 여리고 함락과 태양을 멈춘 사건, 기드온과 삼손, 엘리아와 엘리사의 수없는 기적적인 사건들, 히스기야, 다니엘… 그리고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직접 일으키신 수없는 이적들은 다 기록할 수가 없다고 요한 사도는 말했습니다.
성령시대에 제자들도 수없는 기사와 표적을 일으켰는데,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사건으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표적을 필두로 수없는 이적들이 펼쳐집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이 나았고, 바울의 앞치마를 가져다 병자에게 얹으니 병이 치료되고, 집사인 빌립이 귀신을 내어 쫓고, 각색병자들을 고치고, 광야에서 도시까지 붕붕 날라 다니는 사건까지 수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2.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의 모습
그는 40여세(행4:22)된 남자로,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장애가 있어 구걸을 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른 곳이 아니고 늘 성전 입구에서 구걸했다는 것과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할 때 “왜 이러십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랬어요.”라고 하지 않고 발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을 생전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릇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언제 어느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시려고 준비된 그릇인지 모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장애와, 질병, 고난과 많은 문제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 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기를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3. 베드로와 요한의 자세
그들은 본시 그렇게 담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작은 어촌에서 일생 고기나 잡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디서 그렇게 담대한 용기와 믿음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체험한 성령님의 권능으로 그토록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렇게 말한 베드로는 오른손으로 앉은뱅이를 힘 있게 잡아 일으켰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다음 일을 걱정하지 말아야 함은 예수 이름으로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 알아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영광도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작년 기도원 집회 때, 총회장 목사님께서 소경된 사람의 귀신을 쫓으시고 “눈을 뜨라.” 하니 그 분이 “안 보인다.” 하니까 다시 안수를 하시고 “눈을 뜨고 보라.” 하니 또 “안 보인다.” 하자, 버럭 큰소리로 “눈을 뜨고 앞에 뭐가 보이나 보란 말이야.” 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밝아져 앞을 보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힘 있게 외치고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작된 제자들을 통한 기사와 표적은 오늘날까지 계속 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 때에 끝났다는 어리석은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당신이 그것을 기록하는 주인공이 되십시오. 주님이 오시는 날 까지 사도행전은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