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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 붙들려 세계를 다닙니다

344호 · 2006-09-28

모스크바 공항에서 슬라바 목사의 이모 루드밀라는 어눌한 한국어로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였다. 언제나 활달하고 잘못하는 한국어지만 그 몇 마디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루드밀라다. 그녀는 언니, 그러니까 슬라바 목사의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잘 걷지도 못하고 눈과 귀도 어두워져 고생하고 있다며 목사님이 가셔서 꼭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모스크바에 들릴 때마다 꼭 공항에 나와 영접해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일행에게 식료를 제공해주는 루드밀라다. 더구나 이번에는 시간약속이 잘못되어 앉을 자리도 없는 공항에서 무려 5시간이나 우리를 기다려준 그녀이기에 목사님은 우크라이나에 가면 만나서 꼭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드네프로페트롭스크 공항에는 드네프로 예수중심교회 성도들, 우크라이나 지교회 목사들이 나와 영접해주었다. 특히 니꼴라이 목사 부부는 수백km 거리를 마다않고 직접 차를 몰아 공항까지 나와 주었다. 벌써 우크라이나에 지교회가 5개가 넘다보니 이곳에 오면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정겹기 그지없다.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갓 구워낸 빵을 들고 나와 환영해주는 그들의 사랑이 참으로 따스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멜로디가 울리는 생일 케이크를 들고 나온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손녀와 함께 있었는데, 슬라바 목사의 설명을 들으니 그 소녀가 3년 전 목사님께 안수를 받고 걷게 된 알랴라는 것이다. 2살도 채 안된 핏덩이 같은 계집아이가 온몸이 마비되었다며 알랴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을 찾아와 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 엄마는 술주정뱅이로 아이를 버린 채 집을 나갔고, 아빠도 경제능력이 없이 술에 빠져 사는 참으로 불쌍한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예쁜 옷에 머리에도 예쁜 리본을 달고 공항까지 나와 목사님께 걸어오니 이런 기적이 또 있을까? 목사님은 채 가시지 않은 여독이 다 풀린다며 너무도 기뻐하셨다.

목사님은 모스크바 공항에서 루드밀라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기도요청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슬라바 목사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그런데 드네프로페트롭스크의 슬라바 목사 사택에 점심식사를 위해 도착해보니 슬라바 목사의 어머니가 직접 걸어 나와 목사님께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놀라 그 연유를 슬라바 목사에게 물어보니 당뇨병 증세가 심해져서 걷지도 못하고 앞도 잘 못 보며 잘 듣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미국 밴쿠버 집회 영상을 교회에서 다함께 보았는데, 거기서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그 때부터 어머니께서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다리를 들어 올려 걸으시며 아들 슬라바 목사에게 자랑을 하시더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아들을 잘 둬서 복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슬라바 목사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목사님을 만나 목사님께 붙들리더니 미국도 가고 이스라엘도 가고 전 세계를 다닌다’며 사의를 표했다. 목사님은 동의하시며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에게 붙들리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씀했다.

그러고 보니 슬라바 목사의 집 구조가 바뀌어있었다. 전에 차고와 보일러 실로 쓰던 곳을 개조하여 멋진 식당을 꾸며놓았던 것이다.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들을 대접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식당을 늘리게 되었다는 슬라바 목사의 설명을 듣고 목사님은 식당을 둘러보시며 볼품없던 차고와 보일러실이 슬라바 목사에게 붙들리니 이처럼 멋진 식당이 되었다고 기뻐하셨다.

어떤 그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 소용할 데가 있어 만들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큰 그릇이라고 더 좋은 것도, 작은 그릇이라고 더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그릇만 깨끗하게 준비해놓으면 언제나 주인에게 붙들려 아름답게 쓰임 받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열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업신여길 이유도 없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나 잘 활용하여 이익을 남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깨끗하냐 그렇지 않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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