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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정립하라 (요1:12,13)

343호 · 2006-09-21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에 노신사가 들어와서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에게 말했습니다. “이 호텔에서 제일 싼 방 하나 주십시오.” 아가씨는 이 노신사가 그 유명한 록펠러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습니다. “세계 최대 재벌이신 선생님께서 왜 가장 싼 방에 들어가려고 하십니까?” 하고 아가씨가 묻자 록펠러는 “나는 싼 방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가씨는 “가끔 선생님의 아드님께서도 이 호텔을 이용하시는데, 그 때마다 이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리하시니 좀 의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록펠러는 웃으며 아가씨에게 말했습니다. “아가씨, 내 아들에게는 나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거든요. 내 것이 다 내 아들 것이니 그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저는 20대에 내 나이 또래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사업에 손을 댔고,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부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제게 물려주신 재산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삼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제가 원하는 만큼 아낌없이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이었지요. 우리 부모님은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창조주라는 뜻으로, 우리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시려고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 인해 당신과 원수가 되었을 때, 예수를 중보자로 보내사 다시 우리를 양자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세가 바로 공주의 아들에 입적되니 왕자가 되었고, 왕자로서의 권세를 누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4,25).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바로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의 자녀 된 우리의 권세가 어떠하겠습니까? 록펠러의 아들만 해도 대단한데, 방배동 땅덩어리를 많이 가지고 계셨던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저도 그렇게 풍족했는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떠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그렇습니까? 만물의 주인의 자녀답게 풍족하고 누리며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고 있냐는 겁니다.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되었는데도, 자기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는 거지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분도 모르는데 무슨 권세를 누리겠습니까? 부잣집에서 한 아이를 고아원으로부터 입양했는데, 그 아이가 계속 고아원 생각이나 하고, 고아원에서 입던 옷이나 입으려고 한다면 양부모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심이 의심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잘 나가면 하나님이 아버지 같다가도, 힘들고 어려우면 ‘진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맞나?’ 하고 의심이 드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두 아들은 어릴 때 놀리려고 ‘너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고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랑 내가 똑같은데요, 뭘.” 아무리 봐도 당신과 하나님이 닮지 않은 것 같습니까? 그것 역시 당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세상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들의 권세가 얼마나 좋은 건지 아십니까? 제 아들들은 지금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게 전화를 해서 해결해달라고 합니다. 돈이 필요해도, 문제가 생겨도 제게 해결해달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제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아뢸 수 있습니다. 전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 아들이 제게 전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듯 말입니다. 기도하면 전지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그런데 하나님의 전화번호를 모르신다고요? 하나님의 전화번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러나 아무리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해도 배터리가 없다면 전화가 걸리지 않는 것처럼, 성령이 소멸되면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합니까? 아버지께 아뢰십시오. 지혜가 부족합니까? 아버지께 구하세요. 건강하기를 원합니까?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전화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못 살고, 아프고, 어리석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무시합니다. “니네 아버지 별로 힘이 없나보지?” 하며 놀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무능한 분으로 만듭니까? 어서 아버지께 구하여 머리가 되고 남에게 주며 사세요.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지혜자라도 자식이 ‘잘 살아보겠다’, ‘성공해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둘째 아들이 한동안 공부 좀 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 겁니다. 외국유학을 보내주겠다 해도 공부는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그냥 방치해뒀습니다. 그런데 자기 형 때문에 충격을 받고는 공부를 하겠다고, 자기도 형처럼 외국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버지, 꼭 부자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 꼭 성공하고 싶어요.’ 하면 하나님이 ‘그래, 고맙다.’ 하시면서 밀어주십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자식이 잘 살고, 자식이 잘 되면 왜 그렇게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자식이란 것이 오묘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부모님한테 잘 해드린 것이 있어야 달래지요.’라고 말합니다.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자식에게 받아야 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없어서 못 주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내가 못 쓰고, 내가 못 먹어도 아낌없이 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 마음도 동일합니다. ‘제발 내 것을 가져가서 잘 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때가 있을 뿐입니다. 제 아들이 어릴 때 자가용 사달라면, ‘안 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장성했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그리지 마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자녀와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부모자식 관계를 천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도 예수의 피로 맺어진 천륜입니다. 그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아버지, 도와주세요.” 늘 부르십시오. 육의 아비야 계속 부르면 짜증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백 번을 불러도, 천 번을 불러도 ‘오냐’ 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혹 당신이 불효를 저질렀다해도 다시 아버지를 부르십시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를 뛰어가 맞이한 아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니까요. 속 썩였다고 자녀가 종의 신분이 되지 않습니다. 제발 이 땅에서 잘 살고, 행복하게 사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 말라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

쇠는 달구었을 때 두드리고 음식은 뜨거워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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