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저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할렐루야! 저는 인천 3부 호산나 성가대에서 반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김슬아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고, 교회에서 반주로 봉사하며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고는 갑자기 교회에 나오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맥없는 신앙생활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주일에 인천 성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예배를 위해 단에 앉아 계시는 총회장 목사님을 뵙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펑펑 눈물이 솟았습니다. 그 후로 비록 학생부는 나가지 않았지만 대예배를 드리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한 달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버스가 서서 거기서 내렸는데, 내리는 순간 다른 버스가 달려와 제 발을 치고 가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사고로 저는 전신마취를 3차례나 받았고, 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습니다. 고3인 저에게는 너무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음악대학 작곡과를 지망하고 있었기에 6개월이나 피아노에서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바로 대학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을 코앞에 둔 10월에야 목발을 짚으며 다시 음악공부를 시작했지만 사고로 인해 그 전에 배웠던 것들이 잘 생각나지 않았고, 손가락도 이미 굳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재수할 각오를 하던가, 아니면 점수 낮은 학교를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꼭 경희대에 가고 싶어 제 컴퓨터 바탕화면에 경희대 크라운관(음악대학)을 설정했고, 방은 온통 경희대 사진으로 도배를 했으며, 핸드폰에도 ‘경희대 04학번’이라는 문구를 입력해 넣었습니다.
기도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곡을 쓸 때 천사가 도와 달라고, 제가 쓴 곳의 악보가 빛나게 해달라고, 피아노 연주 시험을 볼 때 아이미 천사들이 교수님들의 귀에 가 붙게 해달라고, 그리고 화성학에서 혹 실수가 있더라도 교수님의 눈을 가려달라고… 등등 자세히 기도했습니다. 제 가족은 물론 인천 3부 성가대원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 모든 기도는 헛되지 않아 저는 당당히 경희대학교 작곡과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입학 후, 선배와 동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신화라고 혀를 내둘렀고, 그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사한 것은 제 발의 상태였습니다. 사고가 난 후 담당 의사 선생님은 제가 다리를 절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제 다리는 멀쩡했습니다. 또한 제 심성에도 큰 변화가 일어 짜증도 잘 내고 화도 잘 내던 성격이 온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리 수술할 때 하나님이 제 심성까지 수술하신 것 같습니다. 제 꿈은 음악교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는 그것이 현실불가능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음악교수는 해외에서 박사는 기본으로 따고 와야 하는데 제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과의 아이들 중에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벌써부터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늘 성적은 평점 차석을 유지했고, 이번 학기에는 학과 전체 평점 수석까지 했지만 환경이 저를 누르고 있었기에 저는 꿈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혹시 유학의 기회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학 중에도 영어회화와 중국어 회화 수업을 들으며 3개 국어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받는 모범 장학금이 턱없이 작은 터라 저는 학업을 중단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크게 좌절하고 있는 저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새로운 장학재단이 출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체능대학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아이들이 다닌다는 인식 때문에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자주 빠졌는데, 신한장학재단이 출범하면서 차등이 없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등록금뿐만이 아니라 대학원 학비는 물론 유학비용까지도 지원해 준다는 겁니다. 물론 선발 절차는 굉장히 까다로웠습니다. 저는 이미 학교에서 선발하는 재단 장학생에 뽑혔지만 이 신한재단 장학금까지 받는다면 등록금 걱정은 물론이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유학까지 갈 수 있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신청자가 무려 988명이었지만 저는 신한의 1기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격유지 심사를 거쳐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성공하려면 자기 것을 찾아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도대체 제가 찾아야 하는 제 것이 무엇인지, 제가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오히려 더욱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다시 유학의 꿈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3학년 2학기, 이제 유학의 기본인 토플시험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기에 저는 다시 한 번 꿈을 펴서 역사의 중심에 서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자들을 들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한에 장학재단을 만드심은 저를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총회장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대로 세계 각 분야의 중심에 우리 교단의 성도들이 있기를 기도하며, 제 분야에서는 바로 제가 그 중심인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