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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행복한 노예의 기쁨을 아는가 (마22:34~40)

341호 · 2006-09-06

목회 초기에 파주 집회를 할 때 저는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봉재 전도사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그 집은 건물의 옥탑이었는데, 첫날 집회를 마치고 그 집에서 하루를 유한 저는 다음 날 아침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어지럽고 힘이 풀려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집회하러 나가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힘을 주세요.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제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주님을 따라갈 겁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제게 들렸습니다. “나를 따라오는 길은 좁은 길이란다.

그래도 오겠니?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는데…” 저는 소리 내어 울면서 주님께 답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어도 좋아요.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말씀하시길, “그러냐? 그렇다면 만물이 너의 것이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음성에 새 힘을 얻고 일어나 집회장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인은 연탄 가스였습니다. 이 전도사의 얼굴에 핏기가 없고 건드리면 곧 넘어질 사람처럼 보였는데, 원인은 다 연탄 가스였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죽어가는 전도사를 살렸고 저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처럼 머리 둘 곳이 없어도 그 분을 끝까지 따라가는, 그 분에게 영원히 매인 노예입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노예입니다. ‘노예가 왜 행복하냐?’고 의문이 들겠지만 노예 된 제가 행복한 이유는 제 주인 되신 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너무 사랑하는 고로 제게 채워진 착고가 고달프지 않고, 힘들지 않습니다. 그 분으로 인해 제게 오는 환난이나 곤고가 두렵지 않고,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 무섭지 않고, 위험이나 칼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십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백세에 얻은 아들을 아낌없이 재물로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풀무불 가운데 들어갈 수 있었고, 다니엘 역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 사자굴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고, 칼에 목이 날아가면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못이 박힌 널빤지 위를 걸었던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믿음의 선친들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주님 없이는 못 살겠다고 고백하는데, 진정 우리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까? 내 전부를 걸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가끔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성도가 몇 주 안 보여서 전화해보면 ‘누가 꼴 보기 싫어서 안 나간다.’고 합니다. 수년간 성가대를 하던 집사가 안 보여 수소문해보면 ‘시험에 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보기 싫어지고, 무엇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그 표면적인 이유를 파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결혼 초에는 남편이 방귀를 뀌어도 다 좋습니다. 혹 시댁에 자주 일이 생겨도 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남편이 이 안 닦고 밥이라도 먹으려하면 더럽다고, 추하다고 난립니다. 시댁에서 부르면 짜증납니다. 표면적인 이유야 이 안 닦고 밥 먹으면 밥맛도 없고 애들에게 교육상 나쁘니까 그런 것이고, 또 아이들 학원 보내랴, 집안 살림 하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실입니다. 진짜 이유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 전과 같지 않은 겁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집에서 무임금으로 일하는 것도 좋았고, 외삼촌 라반이 자기를 속이고 레아를 줘서 다시 7년을 일할 때도 지겹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창29:20).

하나님을 사랑하면 누가 어떻든지, 주변 상황이 어찌 돌아가든지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더욱 힘들지도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나를 택하사 지명하셨고, 나를 위해 죽으셨으며 장차 나를 예비된 땅으로 옮기실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이 사랑을 망각한다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이겠습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아내를 사랑하면 온종일 아내만 생각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일만 합니다. 아내가 싫어하는 것은 괜히 나도 싫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만 하게 되고, 싫어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해야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압니다. 알면서 육신이 약하고 부족하여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육신의 약함도, 우리가 부족함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8월에 있었던 목회자 영성 세미나에서 양재교구의 주향기 전도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사랑할 수 없는 자도 사랑할 수 있고, 용서 못할 자도 용서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가합니다.’라고 말함으로, 그가 교구를 부흥시킨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향기 전도사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택했던 것입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동사(動詞)입니다. 움직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움직여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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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꽉 짜면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압축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더 압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인 이웃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여 결혼하면 서로에게 구속됩니다. 사랑의 띠로 함께 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에 그 구속을 기뻐하고 묶임에 행복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멍에를 매고, 착고에 채워짐이 오히려 행복의 요건이 됩니다. 제가 행복한 노예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착고가 구속처럼 느껴집니까? 그 멍에가 무겁습니까? 그래서 벗어버리고 싶습니까?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벗어 던지기 전에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3,4). 하나님이 비웃으시면 어찌 됩니까? 한 마디로 우리는 끝입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잠1:26~28).

육신의 때가 지나면 영혼의 때가 옵니다. 육신의 때에 하나님을 향한 애정표현에 무성의하면 영혼의 때에 하나님께 무성의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그의 기쁨이 되십시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할렐루야!

사랑하기에 구속되는 것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교회에, 성도에게 불평이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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