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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공갈협박에 속지 말라

335호 · 2006-07-26

오래 전에 인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당회장실에서 장로들과 식사를 하려는데 난데없이 깡패 몇몇이 당회장실 문을 발로 차며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음식이 차려진 식탁 위에 구둣발을 턱하니 올려놓고서는 거친 말로 공갈협박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장로가 이를 만류하자 주먹을 날려 그의 안경이 바닥에 내동그라졌습니다. 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식탁 위에 놓인 화병을 들어 그들이 있는 벽을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화병이 깨지는 것을 보고 그들이 움찔하기에 식탁 위를 가로질러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대장인 것처럼 보이는 자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야! 내가 너 같은 놈들 무서웠으면 목사 안했어. 어디 할 짓이 없어 교회 와서 행패야?” 하며 목덜미를 꽉 조였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바로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하들도 동일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은 이실직고하기를 “웬만한 교회는 다 찾아다녔는데 공갈협박을 하면 다 돈을 줬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너무 의외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살지 말고 예수 믿어라. 아까운 인생을 남 사기치고 협박하며 살 거냐?” 하고 훈계했더니 그들이 그 때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변화되었습니다.

미국이 경제 대공황이라는 경제 위기를 맞아 1,500만 여명이 실업상태에 빠졌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으로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던 시기에 미 대통령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경제공황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경제공황으로 두려워하는 여러분 마음속의 그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지금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자신감 회복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두려움이 가져오는 불안과 패배주의가 바로 위기의 진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설에 깨달은 국민들이 루즈벨트의 자신감과 정부통제가 강화된 뉴딜정책을 신뢰해 경제 불황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중국 빵 중에 공갈빵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빵은 한껏 부푼 것이 대단해 보이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속이 텅 비어 있어 다 부서집니다. 공갈협박이란 것이 마치 이 빵과 같습니다. 공갈협박, 무섭지요. 그러나 무서워하면 협박꾼들은 더 신나라하고 힘을 받습니다. 공갈빵을 한 입 물면 부서지듯 공갈협박 앞에 담대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365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공갈협박으로 두려움을 주는 존재는 악한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공갈협박을 했습니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17:8,9). 생각해 보십시오. 놋투구, 놋경갑을 차고 놋단창을 맨, 신장이 대략 290cm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소리소리 질러댔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래서 사울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놀라 두려워하며 도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어린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날려 거인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비를 통하여 지금까지 자기 민족을 지키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소화(燒火) 되었다 함을 듣고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허락과 물자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반대파인 산발랏과 도비야가 처음에는 이를 보고 조롱하더니 나중에는 위협을 가해 백성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느4:11). 그러나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52일 만에 무너진 성곽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골리앗의 협박에, 느헤미아가 산발랏과 도비야의 협박공갈에 속아서 목적을 포기 했다면 성벽 재건은 있을 수 없었듯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시기하는 무리들에게 협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면 사자굴에, 풀무불에 넣어버린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을 계속 경배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사자굴에서, 풀무불에서 구해내셨습니다.

왜 공갈협박에 두려워 떠는 줄 압니까? 받은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의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담대했느냐 하면 그는 예수로 인하여 다시 태어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고 말한 사도 바울도 그를 향하여 쏟아지는 공갈협박에 대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라고 대응했던 것입니다.

저도 숱한 공갈협박을 받았습니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온 자도 있고, 최루탄을 집회 장소에 던진 자도 있고, 거짓문서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공갈협박에 넘어질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이며, 예수가 살아계심을 늘 체험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것들이 통할 리 없지요.

악한 마귀는 사람을 통해서만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들어서도 위협을 가합니다.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어 배가 물에 덮이게 되자 제자들이 예수를 깨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갈릴리는 제자들의 직업전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환경이 그를 삼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면 잠잠하게 됩니다.

공갈협박은 분명히 불법입니다. 그래서 합법적인 것이 오면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당연히 떠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생은 링 위에서 선 선수와 같습니다. 링 위에 서면 기선 제압이 승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공갈협박에 두려워말고 담대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지킬 것입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혹시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협박 공갈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인 문제는 예수님께 호소하고 육적인 문제는 공권력에 담대하게 호소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겠는가

전의를 상실한 군인의 총은 총이 아니라 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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