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쁨과 감동을 낳는다
몽골 집회를 일주일 정도 앞둔 지난 9일, 급박한 전화가 몽골로부터 걸려왔다. 몽골의 박용구 목사가 장이 막혀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에 목사님은 즉시 전화를 걸어 “수술은 무슨 수술이냐! 나는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만일 지금 네가 죽는다면 지난번 사고 때 죽었지 왜 지금 죽는단 말이냐!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하시며 기도하시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하고 더러운 귀신아 박용구 목사 속에서 떠나갈 찌어다!” 라며 귀신을 쫓아주셨다. 박 목사는 깨끗함을 받고 집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마귀가 먼저 알고 훼방을 한다. 이 훼방이 올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표적이다. 먹구름을 싫어하고야 어찌 단비를 바랄 수 있겠는가! 늘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다. 이날 목사님은 철야설교를 통해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강력히 증거하신 뒤였다. 더구나 예배 후 성가대 박한이 성도가 다리뼈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장로들과 함께 달려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여 부러진 뼈가 다시 붙는 기적을 맛보고 돌아오신 참이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셨다.
고통으로 마음이 한껏 연약해있던 박 목사는 ‘수술은 무슨 수술, 당장 일어나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정신이 버쩍 나더란다. 방구도 안 나오고 변도 못 보는 고통스런 시간이 계속 되어 ‘이러다 죽는구나’ 했는데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난 후 기적이 일어났다. 뒤틀리던 고통이 사라지며 변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목사는 침상에서 일어나 죽을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이러한 믿음을 가르쳐주신 목사님께 감사했다.
7월 17일, 우리는 몽골의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여 귀빈실로 영접 차 나온 박 목사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 살아나와 우리를 맞이하는 자체가 기적인지라 서로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박 목사는 매우 기쁨으로 충만해있었고 목사님을 보자마자 입에 게거품을 품으며 지난 교통사고 때부터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리셨는지 간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죽음이 두 번이나 그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굴하지 않고 목사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으려 애쓰며 몽골교회를 지키고 있는 그가 참 자랑스러운 듯, 목사님은 그에게 ‘이제 죽었다 살았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건강에 유념하여 이 몽골에 우뚝 서는 목사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격려하셨다.
집회 첫날, 유비팔레스(U. B. Palace)에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수립 800주년이라는 국가적 축제기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들었고, 첫날부터 성령의 역사 속에 귀신이 떠나가고 각색 병을 고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통역이 풀리지 않아 목사님은 힘겨운 집회를 끌고 가셔야했다. 그런 중에도 목사님은 모든 사람들을 안수해주십사 하는 박 목사의 간곡한 요청대로 체육관에 모인 모든 무리에게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다.
목사님은 세미나 장소인 노동부 회관을 비롯하여 예배처소로 쓸 곳을 알아보고 돌아가기 전에 계약을 해주고 가실 생각이셨다. 그러나 두 개의 교회를 이끌고 있는데 또 하나를 더해 준다면 오히려 짐을 지워주는 격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시며 기회만 있으면 박 목사와 사모, 교회 일꾼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셨다. 어떻게 해야 교회가 성장하는가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주시려는 것이었다.
“박 목사야! 목사는 오직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쳐야한다. 사람 만날 생각 말고 오로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라. 그리고 이 교회에서 목사님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통역관이다. 제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통역이 시원찮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는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교회가 성장하고 살찌기 위해서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 목사와 통역관 모기(Moki)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야. 이는 아주 명심해야 할 일이다.”하시며 “자신 있느냐?”고 물으시니 “아멘” 하며 두 손을 들어보이자 목사님은 웃으시며 그가 보고 왔다는 장소에 같이 가셔서 새로 지었다는 극장을 교회로 계약해 주셨다. 부디 주님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서 울란바토르를 변화시키는 목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튿날 낮부터 통역관 모기(Moki)는 숙소로 들어와 송 전도사와 함께 기도에 전무했다. 역시 기도의 위력은 이튿날 집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집회를 마치시고 몽골 집회 사상 가장 설교가 잘 풀린 날이었다고 크게 기뻐하셨다. 첫날, 안수를 받겠다고 무질서하게 달려들기만 하던 몽골 사람들도 이튿날부터는 매우 안돈된 모습이었다. 그런 가운데 성령께서 강력히 역사하사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연이어 단으로 끌어올려져 예수 이름 앞에 떠나갔다. 예수 이름으로 각색 질병도 고침을 받아 목발을 들고 걷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등, 기사와 표적이 이어졌다.
집회가 거듭되는 중에도 목사님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들은 다름 아닌 목사님이 세운 교회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세미나를 마치고 차에 오르시던 중, 한 자매를 발견하고 뛰어 나가셨다. 그 교회에서 통역을 담당하던 자매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목사님을 보자 일성으로, “우리 교회도 목사님이 세우신 교회 아닙니까? 오늘 3시에 있는 우리 모임에 꼭 와 주세요.”라고 강청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가슴이 뭉클하시다며 “그래, 가마”하고 그들을 불러 함께 식사 하시고, 저녁 집회를 위해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그들을 찾아가 예배를 인도해주셨다.
목사님은 ‘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운 교회들이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램이요, 나 이초석 목사의 바램이다.’ 하시며 박 목사를 단으로 불러올렸다. ‘이 종은 죽었다 살아난 종이다. 이제 깨닫지 못하고 사랑의 종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버리실 것이다. 이제 성도들에게 상처준 일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하시니 박 목사는 모인 성도들에게 ‘혹시 제가 여러분 마음에 상처 준 것이 있으면 다 용서해 주십시오.’하며 머리 숙여 사죄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목사님은 집회를 마치고 금요일에는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헝거리 교회를 방문할 계획이셨다. 그런데 기다리던 성도들이 나타나지 않자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셨다. 만일 헝거리 교회만 방문하면 그들이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신 것이다. 잔잔한 배려와 깊은 사랑은 기쁨과 감동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감싸주고, 사랑해주는 마음, 이보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 있을까?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자.
마지막 집회에 목사님은 박용구 목사를 단으로 불러올려 기도해주시며 그에게 선목(善牧)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선한 목자가 되라는 뜻이었다. ‘두 번이나 죽었다 살았으니 이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몽골에 우뚝 서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하여 몽골 땅에 다시 한 번 처음의 영광을 되찾아 몽골을 예수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소망하신다.’고 말씀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