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
시베리아는 정말 광활한 땅이었다. 이번에 간 크라스노얄스크주(洲)는 주 전체 면적만 한반도의 24배에 이른다. 그런데도 인구는 200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부분이 울창한 밀림과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50도를 밑도는 살인적인 추위라고 한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라고 하니 1년의 반이 겨울인 셈이다. 그리고는 바로 더위가 찾아와 30도를 웃돌고 봄이나 가을 같은 계절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단다.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이나 구(舊)소련 시절 반체제 인사들을 유형에 처하여 보내던 땅이니 오죽했겠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중에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어디를 가나 사람은 있다’고 고백한 바로 그 땅이 시베리아다. 그러나 막상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얄스크에 가보니 우리가 갖고 있는 일천한 정보를 가지고 상상했던 시베리아와는 달랐다. 크라스노얄스크는 원래 군수산업기지로 구소련시절의 무기 공장들이 있던 도시인데, 지금은 매우 현대적인 도시로 성장하고 있었고, 외국기업들도 다수 들어와 있었다. 다니는 차들 중에는 우리의 국산차들도 많이 눈에 뜨였다.
집회는 매우 힘겹고 고통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하여 시베리아의 젊은 일꾼들을 양육하고 계셨다. 특히 이번 집회에 많은 위기를 겪으며 혼돈스러워하고 있던 스테판 목사는 협박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목사님께서는 이 기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물을 키우시는 것이라고 말씀하며 스테판 목사의 이름을 여호수아(러시아어로 이수스 나빈)로 바꿔주셨다(관련기사 4면).
스테판 목사와 더불어 이 집회를 준비한 장 선교사는 중국인 타운에 교회를 열고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다. 목사님을 뜨겁게 사모하는 그들은 주로 길림성 연변에서 온 조선족들로 가족들을 두고 혈혈단신으로 시베리아 땅까지 건너와 장사를 하며 미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의류제품들을 중국으로부터 사와 팔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날품팔이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젊음을 바쳤던 우리의 어머니들을 보는듯했다.
눈에 밟힐 자녀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고국에 두고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다른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그들을 보니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그들을 식사에 초대하여 위로하시며 꿈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권면하셨다. 헤어지기를 몹시 아쉬워하며 숙소 앞까지 따라온 그들을 위해 일일이 기도해주시고 축복해주셨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거센 바람이 불던 시베리아를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비행기로 무려 5시간, 러시아 땅이 정말 크긴 크다. 모스크바는 2년 만에 들어가 보는 셈인데, 더욱 현대적인 탈바꿈을 거듭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모스크바 중심부로 뻗어있는 중앙가도는 마치 세계 기업들의 부침을 상징해주는 이정표와도 같았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국내 S기업의 휴대폰 광고물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S기업의 LCD모니터 광고와 GM의 자동차 광고 등, 여러 기업들의 광고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해마다 8~9%씩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제발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빅토르 목사는 한국의 영성세미나에도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은 오순절 교단 목사이다. 워낙 시베리아에서 고생을 해서 그런지 빅토르 목사가 우리를 맞이해주는 정성이 너무도 고맙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역시 한국에 다녀간 목회자들은 우리를 영접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빅토르 목사는 교인 중에 젊은 사업가들을 발탁하여 우리 일행에게 차량지원은 물론 식사대접까지 책임지게 하는 것이었다.
시베리아에서 5시간을 날아가 그 날 저녁에 바로 집회를 갖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베리아의 일정이 워낙 팍팍했기에 목사님도, 우리도 모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하나님의 위로와 그분이 주시는 새 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면 마치 큰 빚을 진 사람처럼 긴장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시는 목사님이신지라 우리 모두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 잠시 몸을 가다듬고 다시 집회장으로 향했다. 시베리아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날씨가 가을 초입처럼 선선했다. 비까지 뿌려 더욱 스산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집회장인 오페라 극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벌써 2년이 넘게 흘렀건만 그들은 진실로 목사님을 사모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단에 오르시자 소리를 지르며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동일한 성령의 역사 가운데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특히 혀에 피어싱을 한 소녀가 올라왔는데 목사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신 후 그 자리에서 당장 혀에 있는 피어싱을 뽑아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코걸이, 배에 새긴 문신을 지적하시며 하나님의 사람들은 몸을 단정하고 아름답게 단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목사님은 집회를 마치고 작별을 아쉬워하는 그들을 위해 한사람도 빠짐없이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빅토르 목사는 모스크바를 경유하실 때면 꼭 오셔서 집회를 해달라고 목사님께 강청했고 목사님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하셨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고전9:16)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바로 목사님의 고백이었다. 그러기에 비록 핍박과 환난이 기다려도 주님이 보내시면, 그분이 부르시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