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도울 힘이 없다 (대하14:9~13)
좀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가 그만 교통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구치된 적이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아무래도 형을 받게 될 것 같아 저는 잘 아는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그 목사가 바로 나오는 겁니다. “야! 빽이 좋기는 좋구나.” 하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에 학생체육관측과 협의할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학생체육관에서 철야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순조롭지가 않았습니다. 한번 빽의 맛을 본 저는 이시대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걱정 마, 내가 저 푸른 집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해결될 거야. 네가 그 사람을 만나보고 와라. 내가 전화를 해놨으니 가면 일이 잘 될 거야.” 제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간 이시대 목사가 얼마 후에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그 분이 직접 체육관에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는데요. 체육관장은 허락을 했는데, 거기서 일하는 청소요원들이 들고 일어났데요. 절대 자기네들은 새벽 4, 5시까지 기다리다 청소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체육관장도 어쩔 수 없다고 하네요.” 저는 그 때 해머로 한 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초석, 너 정신 차려라. 너 깨달으라고 그러는 거야. 네가 언제부터 사람을 의지해서 일을 해결했냐?” 저는 그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사람을 의지한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강한 도전과 위협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비판의 목소리만 높자 루터는 좌절했습니다. 어느 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들어간 루터를 그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맞았습니다. 루터는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 하고 묻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예,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하나님 돌아가셨다니?” 루터는 아내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렇게 좌절할 리가 없지요. 당신을 도울 분은 하나님뿐이신데 당신이 그렇게 낙담할 걸 보면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이 분명해요.” 루터는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 주님만이 나의 방패시오, 구원자신데 내가 왜 사람들을 의지했지?” 그래서 그는 심기일전하여 마침내 종교개혁이란 대과업을 이루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圖謀)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세상은 우리에게 손가락질합니다. “그래, 하나님이 병을 고쳐준다며? 어디 하나님이 네 암을 치료하나보자. 어리석기는 쯧쯧…”, 또 “왜 어려운 방법으로 살려고 해? 물론 하나님이 건져줄 수 있지. 그러나 그건 너무 더디잖아. 빠른 방법을 두고 왜 힘들게 사는 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르잖아.” 하며 유혹합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떠십니까? 그 조롱소리가 두려워, 혹은 그 유혹에 이끌려 세상의 방법이나 사람에게 의지하여 일을 처리하고 해결합니까? 그러다가는 저처럼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요? 시편 22편에 다윗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자식에 쫓겨 다닐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조롱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도우사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그를 높이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아바 아버지 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는 감기가 걸려도 기도로 감기를 떨쳤고,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산에 가서 밤새 부르짖어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프면 병원부터 찾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권력 있는 자를 찾아다니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죽은 겁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처럼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 아사왕의 이야기입니다. 아사왕은 남유다의 제3대 왕으로 부모가 행한 우상숭배와 그것에 따른 종교적 부도덕을 배제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군사와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남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아사왕은 전장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구스 사람을 하나도 살아남지 않게 하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즉위 3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오니 인간의 지혜를 발휘하여 아람 왕 벤하닷에게 성전의 재보(財寶)를 보내 원조를 구하여 난을 면했습니다. 그러자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에게 “왕이여, 어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셨습니까? 예전에 구스 사람 백만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을 잊으셨나이까? 왕이 망령되이 행하셨으니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대하16) 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첫사랑을 잃어버렸기에 그런 충언이 들리지 않았고, 결국 그는 병들고 말았습니다. 그 때도 그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의원을 의지하더니 결국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내 부모가 옆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부모를 찾아가 일을 의뢰한다면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아니, 아비를 무시하는 거야?”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 “아버지, 도와주세요. 아버지밖에 도울 분이 없어요.” 하면 비록 해결할 힘이 없어도 어떻게든 일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고 시인하면 분명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 분은 물론 모든 것을 해결하실 능력과 힘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73:25).
제가 사람을 의지하다가 수치를 당한 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교회를 옮길 때 올림픽 공원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거의 동시에 어떤 사람이 300억 원을 주면서 교회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갈등할 수 있는, 유혹될만한 액수의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하나님께 우리 교회의 향방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공원에 들어갔고, 그 하나님의 인도함 따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그 돈으로 교회를 지었다면 오늘의 저와 예수중심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
고난에 처해 있습니까?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세요. 분명히 하나님이 고난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병들었습니까? 히스기야처럼 면벽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분명히 병에서 나음을 입고 장수할 것입니다. 국가가 어렵습니까? 에스더처럼 기도하여 하나님을 움직이십시오. 교회에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해만 보는 해바라기 처럼 주만 보는 주바라기가 되라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