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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바람은 정말 거셌다

332호 · 2006-07-05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공항 국내선 대합실은 여느 시골 버스대합실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마땅히 허리를 펴고 앉을 의자조차 여의치 않았지만, 크라스노얄스크(Krasnoyarsk)까지 가기 위해 우리는 5시간을 참아야했다.

시베리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날씨는 30도를 웃돌 정도로 무더웠다. 사진으로만 보던 시베리아의 밀림이나 초원을 일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우리는 집회 기간 내내 숙소와 집회장을 테러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 오가야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해외집회 역사상 이처럼 무도한 경우도 처음이었다.

이미 이스라엘에 있을 때부터 시베리아의 집회 준비 상황을 장 선교사로부터 보고받으며 거센 바람을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현지에 와보니 시베리아는 말 그대로 시베리아였다. 수도 모스크바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그들의 사고방식도 공산주의 시절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집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봉착하였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종교청의 고위관리가 집회허가를 구두로 약속해놓고 마지막에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고 말았다. 가는 곳마다 한국 선교사들의 음해에 시달리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었지만, 이는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작태이고 보면 성경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마귀의 공격에 뱀처럼 지혜로운 대처를 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

장 선교사나 스테판 목사가 열정은 있었으나 아직 젊은 나이에 지식과 지혜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러시아 종교법은 러시아 정교회의 깊숙한 영향으로 개신교조차 그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일일이 집회허가를 받아야함은 물론 교단의 입김이 거세 이를 무시하고는 러시아 연방국가 어디에서도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스테판 목사가 집회 준비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은 부분도 교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집회를 강행하려한 까닭이다. 그들이 먼저 정식문서로 집회 허가증을 받아놓았더라면 설령 극심한 방해가 펼쳐졌다 해도 근거를 가지고 담대히 대처할 수 있었으련만, 그 점이 끝내 아쉬웠다.

목사님은 스테판 목사와 장 선교사에게 집회허가에 관련된 요로에 지속적으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던 날 오후에 체육관 측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스테판 목사가 변호사와 함께 집회장에 갔다가 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장은 사라지고 다른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나 변호사와 스테판 목사를 마구 구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변호사는 병원에 후송되고 스테판은 겁에 질려 숙소로 달려왔다. 시정부 측에서는 더욱 강압적으로 집회 취소를 요구했다. 만일 집회를 강행하면 군경을 동원해서 강제해산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말 위기였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사 우리를 위경에서 건져주셨다. 목사님은 집회를 위해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의 말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 을 받으셨다며 법 위에 잠을 자서는 안 되고 권세자에게 순복하는 게 지혜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이 시베리아 땅에서 법을 무시하고 나가다가는 집회도 못하고 구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법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예비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결국 집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집회를 반대하는 목회자들이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목사님은 숙소로 오면 만나주겠다고 말씀했다. 그러자 그들은 시간이 없다며 올 수 없다고 전해왔다. 느헤미야를 방해하던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를 만나자고 할 때 느헤미야는 자신을 해하려는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만나주지 않았다(느6:2,3).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가 린치를 가하는 자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겠는가. 그들이 밖에서 만나자고 하는 속셈을 어찌 모르겠는가 말이다.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갑자기 알렉산더라는 오순절 교단 목사가 숙소로 찾아왔다. 집회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하나님의 위로였다. 결국 집회장에 스테판 목사를 보내 집회 무산을 알리고 이튿날부터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한다는 광고를 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에 몰려왔다가 울며 돌아갔다. 심지어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찾아온 병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스테판 목사를 붙들고 울며 하소연하더란다.

이튿날 밤, 11시가 넘어서 두 명의 정복 경찰이 목사님을 연행하겠다고 숙소로 들이닥쳤다. 알렉산더 목사가 요청한 집회를 힘겹게 마치고 더위와 피곤에 지쳐계시던 목사님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았더니 정복 경찰 두 명과 호텔 경비원 두 명이 서있더란다. 통역관 슬라바 목사를 불러 그들의 심문에 응했다. 워낙 담대히 대응하는 목사님과 통역관의 서슬에 그들은 아주 정중히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고 이튿날부터 경호원 두 명을 붙여주었다. 경호와 아울러 감시를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악한 마귀의 방해공작은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다. 호텔 회의실에서 진행된 실업인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다시 정복 경찰들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호텔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테러정보가 입수되었으니 즉시 호텔 밖으로 대피하라는 것이었다. 호텔 내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피하라는 경고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여권과 항공권만 챙긴 채 호텔 밖으로 빠져나왔다. 유럽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호텔 직원들 모두가 성급히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허둥대는 모습이었지만, 우리 집회를 방해하려는 음해가 틀림없었다. 경찰 고위층에서 목사님을 위해 경호팀을 파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목사님은 집회 무산, 경찰 조사, 테러 위협 등으로 매우 곤고하신 상태였으나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고전9:16)’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비록 어떠한 위협이 있다 해도 이 일은 해야 한다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집회와 세미나를 혼신을 다해 완수하셨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정말 거셌다. 그러나 위경에서 건져주시며 늘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구 소비에트 연방을 복음화 한다는 우리의 비전은 그 어떠한 위협과 핍박이 자행된다 해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되고 완수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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