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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요11:34~44)

330호 · 2006-06-21

‘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이초석은…’. 저는 단 위에 서서 제일 먼저 이렇게 외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에 “저러니 이단이지”라고도 하고, “이초석 목사는 교만하다”고도 한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제 진의를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제가 하나님의 종임을 먼저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양 떼를 먹이고, 예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사 제 입술이 하나님의 입술이 되고, 제 손이 하나님의 손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양 떼를 쉴만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게 하시며, 안수할 때 귀신이 떠나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ㆍ정ㆍ의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자신을 인정하는 자를 인정하시고, 당신을 시인하는 자에게 천사를 보내서 역사하십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눅12:8,9). 인정하는 것과 시인하는 것은 실과 바늘의 관계입니다. 즉 인정한다면 그것을 시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결혼식에서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례는 없어도 서로 부부됨을 인정하는 서약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나는 xxx를 아내로 맞아 일평생을 사랑하고 살겠습니다.”, “나는 xxx를 남편으로 맞아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라고 시인해야 부부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첫 부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시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시인할 때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에 오를 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을 미리 시인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정말 제물로 쓸 수양을 수풀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창22).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마주했을 때, 엘리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왕상18:36). 그러자 하나님이 불을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없애서 엘리야가 시인한 대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방 여인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룻은 이방신을 섬기던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곧 자기의 하나님이 되심을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룻의 말을 들으시고 그를 인정하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에게 보아스라는 좋은 남편을 주셨습니다. 시인하는 것, 그것은 말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어떠합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예수를 ‘주’라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 가끔 남편에게 “나 사랑해?”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남편에게 사랑을 시인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자주 시인해줘야 아내들은 남편의 사랑이 아직 변치 않음을 인정하고 만족해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어려울 때, 정말 힘들 때 ‘사랑한다’, ‘믿는다’고 시인해주는 것이 확실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실직해서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아내가 “그래도 당신은 내게 하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남편이야”라고 인정해준다면 그 남편이 평생 그 말을 가슴에 둘 것이고, 아내의 말대로 훌륭한 남편이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하면 하나님은 내내 그 말을 가슴에 두실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겨 피난길에 있었을 때, 또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길에 있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라고 시인합니다. 이 말에 하나님이 감동하사 사울의 왕관을 취하여 다윗의 머리에 씌우셨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고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시인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충분히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오히려 더욱 신실한 믿음을 시인했습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이 그런 그들을 구원함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항상 ‘우리 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 교회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시인합니다. 사실 그 말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 교회에는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 하나 없이 가는데, 교단과 언론에서 매일 개 패듯 하는데 문제가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하나님 들으시라고 그렇게 시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제가 시인한 대로 문제가 없고 부족함이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라비를 잃은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늦게 오셨기 때문에 오라비가 죽었다고 예수님께 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자 두 자매가 말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시인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역사하신 예수님, 장차 우리를 부활시키실 예수님은 시인했지만 지금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을 옮겨놓으라고 명하신 후 다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시고 오라비인 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당신의 기업이 죽었습니까? 당신의 가정이 깨졌습니까? 당신의 교회가 위태롭습니까?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시인하는 일입니다. 주님만이 피난처요 요새요 반석이 되심을 시인해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당신의 기업을, 가정을, 교회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삶이 엉망입니까? 그럼 이렇게 시인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들으시고 더 좋은 길로, 협력하여 모든 일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짜고 서말의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바람이 불때 가지가 드러나듯 어려울 때 믿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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