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본격적으로 세미나 일정이 시작되면서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받은 일정은 목사님이 모두 세 번 설교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방적으로 일정을 바꿔버렸다.
마지막 텔아비브 스케줄은 취소해버렸고, 갈릴리 일정도 미정이었다. 금요일 순서도 토요일로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에서 함께 간 목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유태인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금요일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사전 예고도 없이 스케줄을 바꾸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고 불만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목사님께서 저녁 시간은 계속 맡아서 하시는 줄 알고 이 세미나에 기대를 걸고 참석했는데, 한번밖에 없다고 하니 이만저만 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다니엘도 온 가족이 시간을 내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왔다가 상황이 이러하자 몹시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시몬 나훔 목사는 주최자의 계획에 따라줄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계속 진행되는 스케줄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강사들이 설교했다. 목사님은 시간마다 꼬박 참석하셔야 했다. 지정석을 맨 앞자리에 마련해놓고 참석을 바라고 있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숙소 뒤편으로 보이는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마지막 날 한 번의 시간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고 가겠다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하셨다.
사실 이스라엘에 오기 전부터 이 땅을 밟게 되면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해지역을 돌며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설교하고 기사와 표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땅에 새로운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바람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이었다.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예루살렘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동참하라는 식이었다.
성경이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예루살렘에 몰려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구원의 역사는 이방인의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이 닿지 않은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스라엘의 시간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목사님은 사석에서 시몬 나훔 목사나 집행부의 목회자들에게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유태인들의 선민의식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수긍하는 자세를 보이면서도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마치 ‘너희들은 우리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구원을 받은 복음의 수혜자들이다. 어찌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가.
우리의 지도 아래 따라오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예수님도 분명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마19:30)’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진정 중요한 일은 누가 먼저고 원조가 어떠하니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요, 다시 오실 우리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온 천하만민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마지막 날 밤, 단에 오르시기 전에 나훔 목사에게 기도를 받고 처음 예수를 믿게 된 과정부터 소개하며 목회 21년의 시간 속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살아 역사하셨는지 간증하셨다.
세계 각국에서 온 목회자들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목사님의 설교에 넋이 나간 듯이 주목하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거짓말을 못하시는 하나님, 믿는 자에게 언제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성경이 말하는 영적 비밀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이제 목사님의 설교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곧 통성기도로 들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역사 속에 기사와 표적이 이 이스라엘 땅에 나타나게 될 순간이었다. 설교 전에 보여준 집회 영상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켜보던 참가자들이 내심 기대하고 바라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훔 목사가 ‘시간이 없으니 설교는 그만하시고 마무리를 해주십사’하는 사인을 보내왔다. 목사님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회중을 향해 그만하길 원하는지 물었다. 모두가 ‘노우’를 외치며 계속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훔 목사가 더 완강히 주최자의 요구에 따라줄 것을 요청했다. 목사님은 ‘주최자가 그만하라면 어쩔 수 없다’며 강단에서 내려와 세미나 장을 빠져나가셨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있는 동안 마지막 세미나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던 여러 외국 목회자들이 방으로 찾아와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메모를 남기곤 하였다. 영국에서 온 한 목회자는 ‘자기 평생에 이런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설교 내내 예수로 충만했는데 그렇게 끝나자 내 가슴 속에서 예수가 쏙 빠져나간 느낌이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예루살렘에 거주한다는 유태인 목회자는 ‘밤에 자다가 눈을 떠보니 목사님이 보여서 부둥켜안고 이대로 가시면 안된다고 소리치는데 알고 보니 자기 딸이었다’며 자기를 축복해달라고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늦은 밤, 시몬 나훔 목사를 숙소로 불러 긴 대화를 나누셨다. 어쨌든 세미나 준비로 고생한 나훔 목사를 위로하셨다. 이튿날 아침, 사해로 떠나는 각국의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지난 밤,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한 부분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셨다. 그러자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독일에서 강사로 참석한 튀믈러 목사 부부는 꼭 독일 함부르크로 오셔서 집회를 해달라고 두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여호수아 목사도 크게 은혜를 받은 듯 암스테르담 집회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럽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오묘막측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관련기사 4면).
통곡의 벽 앞에 서서 돌 사이로 기도문을 적어 집어넣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기도하는 유태인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슬픔을 통곡하고 있다지만, 이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파하시고 우리를 성전 삼아 거하시기 원하는 성령께서 진정 통곡하실 일이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외칠 것이 아니라 아직도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내 이웃에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일이 진정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수행해야할 일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