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329호 목차 › 커버스토리

아, 예루살렘(Jerusalem)!

329호 · 2006-06-14

실로 기나긴 고난의 연속이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집회의 곤혹스런 시간들을 넘어 성지 이스라엘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기대가 싹트고 있었다.

드디어 땅 끝 이스라엘에 입성한다는 기대,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공생애를 지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 땅에 그분의 말씀을 들고 입성하는 감회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크라이나 오데사가 준 고난의 시간들은 새로운 전기를 필요로 했고 따라서 우리는 그 새로운 기대와 흥분된 마음을 갖고 오데사 공항에 들어섰다.

이스라엘 행 비행기를 타려면 공항수속이 까다로워 일찍 공항에 가야한다는 말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동행하는 니콜라이, 블라디미르, 일리야 목사 등과 함께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출국수속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쪽에서 파견되어 나온 듯한 관리들과 공항 보안요원들이 마치 죄인 심문하듯 하며 1시간을 넘게 붙잡아놓고 집요한 질문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진땀을 흘리며 질문에 답하고 나자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기가 질 정도였다.

결국 이스라엘 측 초청자인 시몬 나훔 목사의 비서와 이스라엘 관리들 간의 직접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비행수속승인이 떨어졌다. ‘이스라엘 입국이 이렇게 까다롭고 어려워서야 어느 누가 들어가려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전폭적인 후원이 없다면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버텨낼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리라.

그러나 2천 년 가까이 나라도 없이 떠돌며 박해 받던 이스라엘 민족이 질곡의 역사를 뚫고 건설해낸 조국을 지키기 위해 취하는 절박한 조치라는 생각이 들자 한편 안쓰러운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테러의 공포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에 뭐라 항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생각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전통적인 모자와 검은 도포를 입고 활보하는 유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굳어졌다. 저들이 저토록 자유스러운 자세로 조국의 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활보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말이다. 그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고야 말 것이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하는 절차는 의외로 간단하였다. 잔뜩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수속으로 공항 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공항에 영접 나온 나훔 목사의 비서 레비아의 ‘샬롬’이라는 반가운 인사를 받고서야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것이 실감되었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지만,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서 우리는 다시 세미나가 열릴 예루살렘까지 1시간가량 차로 이동해야했다.

인구 600만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그러나 유태인 특유의 강인한 저력으로 오늘날 세계 17위의 경제력을 확보하고 주위 아랍 국가들의 위협을 잠재운 채, 작지만 강한 나라로 성장하고 있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의 영토분쟁, 테러의 위협 등 산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위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성장과 번영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숙소인 키부츠 라맛 라헬 호텔에서 바라본 베들레헴 땅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막을 옥토로 일군 이스라엘 초기 건설자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다시는 국가를 잃지 않겠다는 불굴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국가나 개인이나 그 성패는 자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에서 솟아나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미나 첫날밤에는 약 16개국에서 참가한 200여 명의 목회자들이 한데 모여 찬양하고 미국 참가팀이 준비한 워십드라마가 진행되었다. 땀을 흘리며 성실히 임하는 워십팀의 열정과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깊이 배어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이 참가자 모두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영광스런 하나님을 찬양하며 조용히 묵상하는 가운데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맨 앞자리에서 앉아 지켜보시던 목사님께서 애통하는 눈물의 기도로 좌중을 숙연케 하며 참가자 전체를 기도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계셨다. 세미나 첫날밤은 이처럼 감동스런 분위기로 고조되며 막을 내렸다.

이튿날 오전에 모든 참가자들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섰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감람산에서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 압살롬 기념비,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과 통곡의 벽, 그리고 예루살렘 성곽, 끝으로 예수께서 묻히셨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이르는 순례코스는 조촐한 성찬식으로 끝을 맺었다. 성경의 기록은 역사의 흔적과 증거들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성지를 찾고 그로인해 이스라엘의 관광산업은 살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수혜를 누리고 있는 유태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 토라를 들고 서서 기도소리를 높이며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여전히 선민의식의 견고한 틀에 갇힌 채, 아직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외치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에는 ‘예수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라고 씌어있다. 성찬식을 주관한 영국의 맥 킹스베리(Mac Kingsbury) 목사는 유태인 전통을 예로 들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해주었다.

유태인들은 식사대접을 잘 받고 나면 냅킨을 식탁위에 던져놓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냅킨을 잘 접어서 방 한쪽 구석에 놓고 나온다고 한다. 이는 오늘 대접이 신통치 않았고 그래서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겠다는 뜻이란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 한 쪽 구석에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천 조각들이 잘 접힌 채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는 이 무덤에 오지 않으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삶의 양식과 이 땅위를 뒹구는 작은 돌까지도 예수님의 생생한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다.

329호 다른 글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나눔의 지혜
구원의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