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엡5:15-18)
지난 주일은 성령강림일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일은 부활 주일에서 50일째, 승천일에서 10일 후의 주일을 말합니다. 또 마가 다락방에 홀연히 성령이 임한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리고 부활하신 후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으로(롬8:9),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보호하시며(요3:3),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며(요14:26), 위로하시고(행9:31) 계시하시며(고전2:10) 책망하시니(요16:8), 곧 우리를 살리는 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가 능력을 행하게 하시며,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주심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게 하심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성령을 받지 못함은 기름 없는 등불을 준비한 다섯 처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와 등은 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로서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성령을 받지 못한 자, 그리고 성령은 받았으나 성령을 소멸한 자가 다시 오실 예수님에게 어떠한 대우를 받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셨는데,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무엇 때문에 받지 못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첫째,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성령은 강권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우리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외식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실되지 못한 자 안에 성령은 거하실 수 없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무덤 같은 곳에 어찌 성령이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셋째, 우리의 생각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 빼앗겼기 때문에 성령이 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내 영혼과 내 육체를 온전히 지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 영·혼·육이 세상의 것으로 꽉 차 있다면 어디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넷째,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물도 원치 않으면 줄 수 없습니다. 성령은 인격체이므로 사모하고 환영해야 임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하니 바울이 안수하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니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사도행전 19장에 쓰여 있습니다. 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물세례만을 받은 이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푼 기록이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성령이 임하면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다양한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함을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고전12:8-10).
배운 것도 없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토록 복음을 잘 전한 것도, 능력을 행하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친 것도 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은사들은 신앙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그런데 전쟁터에 나가는 자가 아무런 무기 없이 나간다면 적의 포로가 됨이 당연할 것입니다.
성령이 주신 은사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다윗이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좋은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것도 회개하기만 하면 거저 주시는 것인데요.
우리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많은 모함과 핍박도 받지요. 그러나 그렇게 됨이 옳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100층에 있는 자를 1층에 있는 자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지수표를 가지고 있는 자와 동전을 가진 자의 차이와 같으니까요. 오순절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니 그들이 성령에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니 그들을 조롱하는 자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12:51).
또 성령이 임하면 그에 따른 열매도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이 임하면 기독교인의 생활지침이 바로 섭니다. 그래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그것이 신앙의 열매가 맺히면 변화되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며, 생각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믿음의 경지가 한층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입니다. 간신히 구원되는 믿음의 반열에서 벗어나 신령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깊은 속도 통달하게 되고, 장래 일도 알 수 있으며, 사도바울처럼 3층천에 오를 수도 있고, 엘리사처럼 영안이 열려 불마와 불수레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기대치를 높여야 합니다. 어떤 갈매기는 어부가 던져놓은 죽은 생선이나 생선 내장으로 배를 채우지만 바다를 날다 물속에 다이빙하여 신선한 물고기를 잡아먹는 갈매기도 있습니다. 어느 갈매기가 멋있어 보이십니까? 핵폭탄이 있는데 굳이 권총을 쏘시겠습니까?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기도하여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데, 조루로 물을 주시겠습니까?
성령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마음껏 체험하고 누립시다. 맨날 고꾸라지는 믿음 말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믿음의 경지에 이릅시다. 그러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물이 아구까지 차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 같이, 우리 삶에 기적이 따라오고 땅 끝까지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와 받은 후의 베드로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신앙의 기대치를 높여야 우리 삶의 기대치도 높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