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마5:13~16)
얼마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몽골에 들어가 몰지각한 행동을 해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신성한 대학 강의실에서 음란 비디오를 제작한 일입니다. 이 일로 몽골 국민들이 대노(大怒)했고, 한창 한류열풍으로 높아졌던 대한민국의 주가가 순식간에 곤두박질 쳤습니다.
우리가 우리 땅에 살고 있을 때는 잘못된 일을 해도 집안일이니 우리나라 국호까지 들먹거리지 않지만, 우리가 해외에 나가면 이처럼 우리의 모습이 바로 대한민국의 모습이 되기에 잘못하면 나라가 빈축을 사게 됩니다.
어른들이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향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 아이는 뉘 집 자식인데 저 모양이야?” 물론 이 말은 내 집 아이에게는 쓰지 않습니다. 남의 집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지탄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 집에 있을 때야 잘못하면 야단치는 것으로 끝이지만 남의 집 아이는 그 부모까지 욕을 먹인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설혹 실수하고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그를 기른 목사님을 욕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다릅니다. 만약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본이 되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 모양이야?”, “도대체 어느 교회에 다닌데? 목사님은 누구래?” 이렇게 족보를 들먹이게 됩니다.
즉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정계나 재계의 거물급 중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뒤에 꼭 붙는 꼬리말이 ‘어느 교회 장로, 집사’ 아닙니까? 이렇게 언론이 공개하는 것은 ‘교회 다닌다면서 왜 이 모양이냐?’고 손가락질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영적 가정인 교회 내에서의 철저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나가서도 새는 법이거든요.
파라과이에 가면 꽤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바로 ‘이초석 빵집’입니다. 그곳 사장이 제게 은혜를 받고는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겁니다. 제가 그에게 “이왕 내 이름을 붙였으니 내 이름 망신시키지 말고 좋은 빵을 만들라”고 했더니 그가 “목사님 이름을 붙였기에 더 좋은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더니 더욱 유명해지고 판매도 엄청나게 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됩니다. 우리의 언행심사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수치스런 이름도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하기만 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 남 보기에 부끄러운 일은 안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느 면에서든 바른 사람이었고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다니엘을 시샘하던 자들은 그가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고는 그를 올무에 묶을 방법을 찾다가 다리오 왕에게 ‘삼십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든 무엇을 구하면 무조건 사자굴에 던지자’고 합니다.
왕이 이에 승낙하고 금령을 세워 그 조서에 어인을 찍음으로 변개치 않게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결국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기는 했지만 밤새 침식을 폐하다가 아침에 사자굴로 달려갑니다. 급하게 달려간 왕은 다니엘이 살아있음을 알고 심히 기뻐합니다. 그리고 왕이 조서를 내리는데 그것이 이런 내용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단6:26). 영·혼·육에 분명한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3:1).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에게 교회가자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남편에게 행위의 본을 보이면 믿는 아내의 행위를 보고 ‘과연 우리 집사람은 달라’ 하고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확대해석하면 믿지 않는 이웃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을 외치는 것보다 우리가 반듯하고 옳게 행동하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습니까? 예수 안 믿는 남편이 어디 아프기라고 하면 “꼴좋다. 교회 안 나가니깐 하나님한테 맞은 거야”, 이러면 남편이 “그래, 넌 안 다치나 보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러지 말고 그 때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위로한다면 머지않아 “나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 좀 믿어볼까?”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술 마시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주저 없이 하면서 ‘예수 믿자’고 하면 ‘놀고 있네’ 이럴 것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의 광고판이요, 광고모델인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와 말이 곧 예수님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주 예수중심교회 한광옥 목사는 여주에 부임하여 내려가니 ‘이단교회가 왔다’며 주위의 반응이 냉담하더랍니다. 그 소문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안 한광옥 목사는 ‘아하! 좋은 소문도 잘 퍼져나가겠구나.’ 하고는 지역의 궂은일은 도맡아하고, 본을 보이며 노인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생각대로 그 소문 역시 파다하게 퍼져 그 지역에서 인정받고, 부흥됨은 물론 그 지역의 유지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했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중심교회가 잘못된 교회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좋은 교회가 없다”고 칭찬을 하며, ‘이초석 목사’ 이름까지 덩달아 주가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한광옥 목사의 옳은 행위가 우리교회의 위상을 올려놨고, 무엇보다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과 찬양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어져도 안 되고, 그 이름이 훼손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시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48:9). 그런데 우리 때문에 귀하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된다면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그것도 산 위의 동네에 있는 빛이며, 등경 위에 있는 등불입니다. 곧 드러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선한 사업에 힘쓰며,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를 돌볼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우리를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게 인지도가 높아지면 하늘나라 확장이 왜 어렵겠으며, 그 지역을 바탕으로 사업이 왜 힘들겠습니까? 정계 진출인들 어렵겠습니까?
얼마 전에 장로님들과 길을 지나가다 자신의 얼굴을 간판에 새긴 것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갔는데, 음식이 아주 맛깔스러웠습니다. 제가 그 주인 되신 할머니에게 “이 집은 간판에 할머니 얼굴이 걸려있으니 그 얼굴 때문에라도 더욱 맛있게 해야겠네요.” 했더니 할머니가 “그럼요, 제 명예를 걸고 하는 겁니다” 라고 답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어디가든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밝힌다면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어디가든 ‘목사’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더욱 조심하게 되고, 더 양보하게 되고, 정도(正道)를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삼성이나 LG가 기업의 이름을 걸고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영·혼·육을 아름답게 가꿉시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더욱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그리스도 향기를 뿜는 자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빛과 소금이 됩시다. ‘저 사람만 같으면 예수 믿겠다.’할렐루야!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핍박을 기쁨으로 받되 인격적인 모욕은 받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