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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목차 › 선교기행

옷 벗을 각오했습니다

325호 · 2006-05-17

우리는 이번 인도 뉴델리 집회를 통해 큰 수확을 얻었다. 인도의 수도에서 열린 기독교 집회 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기사와 표적 가운데 성령의 불을 던지는 대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경찰 측 추산 인원 10만 인파가 몰렸다는 이번 집회에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70%, 그러니까 약 7만 명이 힌두교도였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고무하게 했다.

그들은 단지 ‘기도회’라는 옥외광고판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는데, 생전 처음 접하는 예수 이름의 권세와 그 거부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 앞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앞 다투어 결신카드를 써내며 그들은 ‘예수를 더 알고 싶다, 목사님의 교회가 인도에 있는가, 어느 교회를 가야 하는가’를 쉴 새 없이 묻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 집회를 준비한 팀들 가운데 자그달푸르의 아브라함 목사와 감리교 감독 다스 목사, 그리고 뉴델리의 다니엘 조지 목사가 이번 집회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 이름을 Jesus Centered Church(예수중심교회)로 개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수중심세계하나되기운동이 착착 결실을 맺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집회를 힘겹게 마치고 난 후,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5월 30일 오전 11시, 다니엘 조지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뉴델리 경찰국장 마태(C. V. Matthew) 장로를 만났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 답지 않게 참으로 겸손한 신앙인이었다. 집회 때 마다 각 사회지도층 인사나 목회자들이 나와 대표기도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이크만 잡으면 단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시간을 끌기 일쑤였다. 하긴 그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더구나 낮 시간부터 먼 거리에서 찾아와 불편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는 군중들에게 그들의 행태는 짜증만 불러일으킬 따름이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속히 이초석 목사님이 등단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 역시 대표기도를 위해 나온 마태 경찰국장은 ‘오늘 단에 서시는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바란다’는 짤막한 기도만 마치고 서둘러 단에서 내려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공감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그는 이번 집회 허가를 위해 찾아간 아브라함 목사로부터 이초석 목사님에 대해 소개 받고는 집회 후 자신이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이 집회를 돕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인도의 정부요직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 힌두교인들이고 그들의 입김이 거센 마당에 힌두교신에게 바쳐진 땅을 기독교 집회를 위해 허가해준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허가를 약속했다가 취소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요컨대 마태 경찰국장은 하나님께서 이번 집회를 위해 준비해놓으신 인물이었다. 그는 이 집회가 끝나고 이 도시에,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일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각오로 나선 것이었다. 어찌 하나님께서 이런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를 외면하시겠는가.

사실 이런 후진국의 정부허가문제들은 정식루트보다는 권력자들에게 돈을 내밀고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브라함 목사는 원칙대로 나섰다. 정식루트를 밟아 허가를 신청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요로에 마태 경찰국장을 준비해놓으신 셈이다. 결국 집회 허가는 집회 바로 전날 이루어졌다. 수많은 외압을 물리치고 믿음을 지킨 마태 경찰국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태 장로와 그 가족을 만났다. 참으로 신실한 믿음의 집안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태 장로의 부친이 목사님이란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신앙의 뿌리는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부친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마태 장로가 그토록 담대하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었으리라.

집회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임윤석 사장을 통해 들은 뒷이야기에 따르면, 집회에 관련되었던 뉴델리의 지도층 인사들이 보신(保身) 차원에서 지방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집회를 도왔다기보다는 이름만 올려놓고 차려놓은 밥상에 달려든 자들이다. 오히려 마태 장로처럼 적극적으로 협력한 자들은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앙의 소신대로 행동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우리 인생사에서 수시로 만나게 된다. 위기 앞에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하는가를 보면 그의 인물 됨됨이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게 마련이다.

주를 위해 죽으러 가자고 했던 도마도, 절대 스승 예수가 붙잡혀가는 일은 없게 하겠노라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도, 다른 모든 제자들도 예수가 붙잡히자 혼비백산하며 도망가고 말았다. 성령에 충만해진 제자들이 죽음도 불사했던 역사를 보면 역시 위기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도 성령에 충만한 신앙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기도가 떠난 자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편안하다, 안일하다 할 때 목청을 높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위기가 닥쳐올 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말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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