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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면 상상력의 전원이 꺼진다

323호 · 2006-05-03

전쟁은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승리만이 사는 길인데, 어떤 자세로, 어떤 각오로 임하느냐가 승패를 판가름한다. 사력을 다하는 자, 죽고자 하는 자를 이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목숨을 보전코자 하고 현재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은 두려움이란 적 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번 인도 뉴델리 집회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난항이 계속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가 어딘가? 바로 힌두교의 본산이요, 온갖 이방신들이 산재하고 있는 우상의 나라 아닌가? 더구나 인도 북부는 남부와 달리 힌두교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수도 델리는 거기에 더하여 정치적인 입장까지 개입되다보니 더욱 까다롭고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그달푸르에서 이 집회를 위해 수도로 온 아브라함 목사와 수도 델리 측 준비위원장인 다니엘 죠지 목사, 그리고 개인의 사업을 뒤로 하고 인도 집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임윤석 사장은 중론을 모아 집회명칭을 부흥회가 아닌 축제로 정하고 또한 이초석 목사님의 인도 입국 자체가 거절될 것을 우려, TV광고를 포기하고 시내 입간판들과 전단지를 활용하여 광고를 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입간판에는 ‘기도회’, 혹은 ‘축제’로 글자만 크게 나가고 이초석 목사님의 사진이나 집회장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번 집회는 오로지 발로 뛰는 수고와 입소문을 통해 광고가 된 셈이다. 전쟁의 승리는 모사가 많아야 하고 모략에 뛰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인간이 꾀를 내고 수를 써도 전쟁에 앞서 두려움이 앞서면 생각이 막히고 보이던 길도 보이지 않게 되는 법이다.

우리는 인도 자그달푸르 1, 2차 집회를 경험하며 인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인도의 문을 여신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하였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사43:13).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누가 변경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여신 문을 누가 닫을 수 있겠는가(계3:7).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대적하겠는가(롬8:31). 그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롬8:35). 그러나 원수는 집안에 있다. 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능한 지휘관이 무서운 법이다. 그들은 힘겹게 집회를 위해 발로 뛰며 일하고 나서도 입으로는 두려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집회준비임원인 바부 목사는 집회 첫날을 마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걱정거리만을 쏟아놓았다.

“집회장 바로 옆에 국가 정보기관인 비밀경찰 건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회 내내 목사님의 설교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면 목사님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이 나라에서 추방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걱정을 앞세운 협박과도 다름없었다. 두려움에 생각이 고착되니 모든 생각의 전원, 상상력의 전원이 꺼져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집회 첫날의 전쟁은 정말 악조건 속에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영상장비가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 그 넓은 운동장에 몰려든 인파는 목사님의 목소리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 위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영상으로 중계해주어야 했다. 결정적 취약점이었다. 진행요원들은 요동하는 귀신들을 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통역관들에게 소리치며 호통을 치셨다.

“정신 바짝 차려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줄 수도 없다.”

링 위에 오른 권투선수를 누가 도울 수 있겠는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오직 본인 스스로의 책임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악전고투 속에 첫날 집회를 마쳤다. 기대한 바가 커서 그랬는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안타까움이 앞섰다. 그런데 현지준비위 목사들은 희색이 만면에 가득했다. 수도 델리에서 열린 기독교 집회 사상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대수준이 다른 것인지, 숫자 감각이 다른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의 양상과 추이를 저들이 어찌 알랴. 목사님은 하나님과 한국의 성도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아시기에 밤잠을 설쳐가며 기도에 전무하셨다. 전쟁에 기선을 빼앗기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성도들은 이 집회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터였다. 뭔가 전기(轉機)가 필요했다.

이튿날 집회에는 대형스크린이 세어졌고, 무엇보다 큰 원군은 한국의 금요철야에 참석한 우리 성도들이었다. 정확하게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 반, 금요철야에서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해줄 시간이 바로 집회가 시작되는 시간인 것이다. 정말 기도의 위력은 놀라웠다. 장시간을 기다려 단에 오르신 목사님은 먼저 인도 자그달푸르 집회 영상을 보여주셨다. 목사님이 설교하시기에 앞서 많은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목회자들, 정치가들, 권력자들이 순서마다 나와 한마디씩 하는 것이 1시간을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튿날 집회는 첫날과는 달리 완전히 반전되고 있었다.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요동하는 영상을 보던 무리 가운데서 더러운 귀신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뒹구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청각적인 효과보다 시각적인 효과가 컸다. 이초석 목사님에 대해 생소한 그들에게 집회 영상을 보여주는 이상 큰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무리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집회 통제를 위해 파견된 200여 명의 경찰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 성령의 역사가 휘몰아치고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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