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없이는 성공도 없다 (눅12:49~53)
권투선수들은 때리는 연습도 하지만 맞는 연습도 합니다. 맞다보면 맷집이 좋아져 웬만한 펀치에는 끄덕도 안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챔피언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엄마들은 어느 정도 뜨거운 냄비는 그냥 맨손으로 만집니다.
뜨거운 것에 손이 단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람이 세게 부는 쪽의 나무껍질이 훨씬 두꺼워 톱이 잘 안 들어가고, 한 번 부러진 뼈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온실 속의 화초는 조그마한 온도 차이나 바람에도 잘 죽지만, 야생화는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랍니다. 제가 위에 나열한 많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고난과 환난은 우리를 단단하고 야물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도에 가면 한 동네는 덮을 만큼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그렇게 거대하게 자라게 된 이유를 동네 사람들은 옹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무에 옹이가 많아 톱이 잘 안 들어가고, 땔감으로도 적합지 않아 손 댈 생각을 못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무에 옹이가 많은 것은 살아남기 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옹이 때문에 잘리지 않고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21년을 목회하면서 저는 참 많은 고난의 바람과 환난의 폭풍우를 통과했습니다. 교단 측으로부터 배척은 물론 언론의 무차별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집회 도중에 최루탄이 터지기도 하고, 몽둥이를 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으며, 미국에서는 권총의 위협도 받았습니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집회 도중에 전기가 끊겨 깜깜한 곳에서 육성으로 설교를 한 적도 있고, 키르기스스탄에서는 KGB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그 상처로 인하여 아프고 화도 치밀었으며, 눈에는 눈으로 대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상처가 아픈 것인 줄만 알았는데 상처가 아물고 나니 그 자리가 더욱 단단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이 말씀은 사도바울의 여정에 옹이가 많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그 옹이로 인하여 유럽을 복음화 했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그를 대항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은 고난과 핍박, 즉 옹이는 예수의 흔적입니다. 이 옹이로 인하여 세상이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며, 세상이 우리를 불태우지 못하게 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이 흔적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 면류관을 받을 증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핍박을 받아야 했나요?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그래서 복음이 집에 들어가게 되면 아비와 아들이 분쟁하고, 딸이 어미와, 그리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분쟁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배운 것이 없어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없어 구걸하다 핍박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를 전하다 그런 것입니다.
4월 말에 있을 인도 집회에 모슬렘과 힌두교도들의 방해공작과 협박이 심하다고 합니다.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임 선교사가 제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방해가 아주 심한데 집회를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죽으면 돼.” 옹이 부분을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부분입니다. 제가 주를 위해 죽겠다는데 무엇이 겁이 나겠습니까? 인도에 불을 던지러 가니 분쟁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옹이가 박힌 부분이 타지 않듯, 톱이 들지 않듯 그들의 훼방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믿음입니다. ‘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때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그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불 속을 걸어가더라도 그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사43:2).
복음 증거는 고난이나 핍박이 와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천국과 복음에 대해 전파하신 것을 보면 매우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왜 사람들이 과학을 신뢰하는 줄 압니까? 보여주고 입증해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왜 주의 종들을 믿지 못하는 줄 압니까?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막연한 말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제가 세계 곳곳에 집회를 하면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어 쫓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다시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하고, 보여주다가 온 몸과 마음에 옹이가 가득 박혔지만 저는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나지도 않습니다. 이 고난이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무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고, 해일이 바다 속을 정화하듯, 천둥 번개로 인하여 만물이 힘을 받듯 고난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전진하게 만듭니다. 부력으로 배가 뜨고, 바람의 저항이 있어야 비행기가 뜨는 이치와 같은 것이지요.
예수 때문에 인격적으로 치명타를 입었습니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를 증거하다 모함을 받았습니까?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보다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만들 것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었습니까? 찬양해야 할 일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더 많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육체에 굳은살이 박이고, 예수님 때문에 마음에 옹이가 생겼다면 분명히 하나님이 당신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깊게 생각하실 것이니 우리 고난당할 때 감사합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할렐루야!
부력(浮力)이 있어야 배가 뜨고 항력(抗力)이 있어야 비행기가 뜬다
조직적인 정신력이 조직적인 군사력을 이긴다
